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커뮤니티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느냐고. 나는 그 질문에 늘 같은 답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나의 에너지는 외로움에서 온다고.
외로운 것보다 바쁜 것이 편했고, 고독한 것보다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더 좋았다. 한국에 있는 9형제 가운데 중간으로 자라며 언니와 오빠, 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배우고 작은 사회를 경험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혔는지도 모른다.
뉴욕의 공립학교에서 20년을 일하며 수많은 문화의 차이와 오해, 때로는 인종차별과 과소평가를 마주했다. 그 시간을 견디며 나는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했다.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로도 자기소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나라의 노래로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도 배웠다. 문화의 장벽과 편견은 때로 한 곡의 노래로도 허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팬데믹은 또 다른 시험이었다. 학교가 갑자기 문을 닫고 대면 수업이 순식간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익숙했던 모든 시스템이 바뀌었고, 새로운 방식의 업무를 하나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낯설고 막막했지만 ‘안 되면 백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시도했다. 그래도 막히면 기도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돌이켜보면 외로움은 나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었다. 외로운 시간은 나 자신에게 투자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기회였다.
나이가 들수록 외모와 체형은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를 관리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한 자기관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에서는 상황과 장소에 맞는 옷차림 하나도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가 된다. 그것은 말없이 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포용하면서도 차별에는 맞설 수 있어야 하고, 억울한 사람의 사정을 내 일처럼 함께 아파하며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한 커뮤니티 리더로 성장해 왔다.
최근 선거를 치를 때마다 뉴욕의 언론은 아시안 커뮤니티가 캐스팅보트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한국 정치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지역 정치에는 다소 소극적이던 한인 사회도 이제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음악과 문화 콘텐츠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의 문화는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바로 문화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이제는 무엇이든 혼자서도 해내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도록 스스로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외로움이 찾아오는 날에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 밥 한 끼를 함께 나누다 보면, 어느새 곁에 사람들이 생긴다.
인공지능이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사람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그 외로움을 나를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삼는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그들이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그 삶에 나는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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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전뉴욕한인학부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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