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반 때 한복 입고 나가 덕수궁에서 미팅했다는 외숙모의 이야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십 년 연상일 뿐인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여겨지니 그만큼 세월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말이리라. 하기야 우리는 대학 때나 하던 미팅을 요즘 애들은 중학교 다닐 때하고, 연애 편지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주고받는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이 세상을 세월을 당겨놓는 바람에 모두들 조숙하다 못해 조로 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의 자살 사이트의 영향으로 목숨을 버리는 철부지들이 있고 포르노 사이트 때문에 날밤 새우는 속없는 성인도 있는 등의 악영향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유익한 점을 간과 할 수는 없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세계는 일일생활권에 들게 되었다. 아프간에 파병된 미군 병사는 휴식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사무를 평상처럼 본다고 하지 않던가?
국제 펜클럽(pen)에서 마련해준 홈페이지가 생겨서 그걸 관리하느라 매일 컴에 들어간다. 새 글을 올리기도 하고 글 배경에 경치도 넣어보고 음악도 깔아보고… 늦게 배운 놀음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다. 하다보니 요령이 차츰 붙어 소위 웹 서핑을 하며 이리저리 찾아가 보게 되었다. 그래서 만난 친구가 제법 있는데 봄동산, 알토란, 유소굳, 우사기, 몰운대 제씨이다. 이게 무슨 사람 이름? 하실 분이 있겠지만 요즘 같은 개명 천지에 그런 의문을 갖는다면 형광등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억울해 할 자격이 없겠다.
위의 이름은 인터넷상에서 통용되는 아이디이다. 봄동산님은 현직 교사로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느라 남은 젊음(?) 불태우고 계신 60세 가까운 분이시다. 늘 지혜로운 말을 해주시는 일명 사이버 카운슬러. 알토란 아줌마는 알똑똑이. 사이버상의 주치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남편이 의사인 듯하다. 유소굳은 이름대로 엉뚱하고도 재치 있는 유학생 부인. 예전의 나를 보는 듯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젊은 아낙이다.
우사기는 한국언론의 특파원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기자인데 폭 넓은 지식과 기가 막힌 글 솜씨에 반했다. 사이버 보이프렌드 몰운대씨는 해박한 한문 실력으로 보아 연장자임에 틀림없는데(그의 아이디가 구름이 지는 언덕이라는 뜻의 한자) 칭찬 박사님이시다. 별 볼일 없는 나의 잡문을 명문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유일한 분. 나는 재미없게도 jal이라는 이름의 이니셜을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 일본에다 더러는 독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캐나다에 있는 이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소식을 비롯한 각 나라의 풍물, 삶의 지혜 등을 배우며 때론 글 소재를 얻기도 한다. 편지는 e-mail이 대신하고, 책은 e-book으로, 샤핑은 e-bay에서 하는 세상이 되었다. 상점이나 마켓의 쿠폰도 집에서 인쇄하여 장보는 세상.
그러니 신세대인 아들아이가 컴퓨터를 끼고 사는 것이 이해가 된다.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고 매일 잔소리를 해 대었는데 이젠 입장이 바뀌었다. 가끔 아들아이가 채팅할 때 옆에서 들여다보며 참견을 했었다. 쓰고 있는 스펠이 틀리다고 지적하면 왕 짜증을 내곤 했다. 컴퓨터에선 그렇게 쓴다나? 그런데 나의 사이버 친구들도 그들만의 용어를 쓴다.
"방가 방가" 토인들의 주문 같은 이 말은 반갑다는 인사말이란다. 아름다운 한국말이 자꾸 파괴되는 것 같아 처음엔 거슬리고 어색했다. 암호와도 같은 사이버 용어들… 흉보다가 닮는다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쓰게 되었다는 게 아닌가. 당연하다는 뜻으로 "당근이지" 했다가는 또 흉 떨린다. 그건 이미 구세대의 언어라고. 참으로 흥미 있는 사이버 세상, 사이버 친구들이다.
참고로 나의 홈피 주소는 http://member.kll.co.kr/bsle. 누르면 당근 화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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