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40년만에 할리웃에서 거행된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은 할리 베리와 덴젤 워싱턴이 각각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차지, 인종의 벽을 깬 감동적인 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밤이 공교롭게도 돈선거와 흑색선전이 난무한 가장 지저분한 오스카 캠페인으로 얼룩졌다는 사실은 지극히 유감스럽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인 ‘아름다운 마음’(A Beautiful Mind)이 소재로 삼은 실존인물 존 내쉬(73)가 정신분열증을 앓는 동안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을 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보도가 오스카상 투표용지가 아카데미 회원에게 배달되는 시기에 맞춰 등장했다. 후보 영화에 집중됐던 흑색선전이 결국 실존인물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진 셈이다.
’아름다운 마음’의 제작사인 유니버설은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의심이 가는 영화사를 거명하지 않은 채 경쟁사가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했고, 다른 영화사들도 유니버설이 음모설을 조장하려는 한다는 음모론으로 대응해 서로 손찌검을 하는 추태가 벌어졌다. 여러 관계자들은 이번 캠페인을 토대로 좀처럼 흥미진진한 스릴러 영화가 나올 수 있겠다고 비꼬았다.
오스카 캠페인은 96년도부터 노골적으로 두드러졌는데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매년 오스카상 시상식을 앞두고 영화사마다 후보작을 홍보하느라 300만∼2,000만달러를 퍼붓는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홍보 자금이 대체로 최우수 작품상에 집중됐던 것에 비해 올해에는 작품상은 물론이고 연기상, 심지어 올해 신설된 만화상 부문에까지 퍼부어지면서 오스카상 캠페인 지출액이 전년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결국 작품상을 차지한 ‘아름다운 마음’은 이번 캠페인에 최소한 1,500만달러를 투입, 아카데미 회원당 약 2,600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큼 돈을 퍼부으니 흑백선전과 비방전의 등장은 당연한 것 같다.
오스카상을 떠나 할리웃 영화들의 홍보비가 한결같이 전체 지출비용의 30∼40%에 달해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 되고 말았다.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이었던 ‘침실에서’는 홍보비가 600만달러로 400만달러의 제작비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작품상 후보작인 ‘반지의 제왕’은 제작비가 9,300만인데 홍보비가 자그마치 5,000만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마침 오스카 시상식이 거행된 주말을 전후해 워싱턴에서는 선거자금 개혁법이 연방의회를 통과하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서명해 돈으로 퇴폐한 정치 선거에 새바람을 불어 넣으려는 개혁 운동이 거의 7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과실을 맺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오스카 주연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할리와 워싱턴이다. 우연이겠지만 할리웃과 워싱턴 중 어느 곳에서 선거자금 개혁법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지 생각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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