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권정희 편집위원>
30대 후반이후 중년층에게는 대개 ‘만화’에 얽힌 유년기 추억들이 있다. 과외공부 빼먹고 만화가게의 딱딱한 의자에 숨어서 느끼던 죄책감과 짜릿한 흥분,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 꺼내 만화 빌려 보다 들켜서 종아리 맞던 일, 여름밤에는 왜 그렇게 모기가 많던지 다리를 온통 뜯기며 만화 독서삼매경에 빠지던 일 … TV가 아직 흔치 않았던 60년대, 만화는 어린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오락이자 유혹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화는 성인으로까지 독자의 범위를 확대했는데 그 대표적인 공로자가 고우영씨였다. 72년 일간스포츠에 실렸던 고우영씨의 ‘임꺽정’은 그날 분의 만화를 안보면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로 전무후무한 인기를 끌었다. 이어 80년대에는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지금도 만화는 주간지, 일간지 할것없이 공해 수준으로 너무 많이 게재되고 있지만 과거 같은 산뜻한 인기는 이제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철인’이나 ‘꺼벙이’‘동물전쟁’같은 어려서 보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혹은 TV 만화영화 ‘요괴인간’이 일반 극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유년기의 향수에 젖어 자녀들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하게 되지 않을까.
영화 ‘스파이더 맨’에 대한 미국 베이비 부머들의 감상이 바로 그런 것같다. 지난 3일 개봉된 ‘스파이더 맨’은 주말 3일간 1억1,40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박스 오피스 신기록을 세웠다. 소니사는 영화 제작에 1억2,000만달러, 마케팅과 배부비용으로 5,000만달러를 투자했는데 개봉 불과 며칠만에 그 돈을 다 뽑게 되었다.
평범하다 못해 꺼벙한 소년이 방사능에 감염된 거미에 물리면서 거미인간이 되는 이야기, 손에서 거미줄이 나오고 벽을 기어오르는 능력이 생기면서 뉴욕의 마천루를 누비며 악당들을 쳐부순다는 만화 같은 영화가 왜 그렇게 인기일까. 지난 주말 두 아들을 데리고 꼭두새벽부터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왔다는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베이비 부머의 노스탤지어이지. 60년대말, 대학에 다니면서 만화책 수집이 취미였어. 그때 재미있게 보던 만화를 이제 내 아이들과 같이 영화로 보게 되니까 나의 청춘을 아이들과 나누는 느낌이야. 그리고 9.11 테러 같은 사태를 겪고 나니 이런 단순한 이야기, 단순한 영웅담이 더 신선하게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아”
이민1세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세대를 뛰어넘는 문화적 공감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추억에 젖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극장으로 향하는 친구들 옆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쓸쓸할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요괴인간’같은 친근함은 없다 해도 이번 주말 아이들 손을 잡고 ‘스파이더 맨’을 보러 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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