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 성 칼 럼 세상사는 이야기
▶ 이정아<소설가>
몇 년 전 ‘사랑을 그대 품안에’ 라는 TV 드라마가 센세이션일 때 남편은 색서폰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이 먹은 남편이 주인공 차인표를 흉내내는 줄 알고, 혀까지 차며 조롱했었다. 이년정도 하더니 트럼핏으로 악기를 바꾸어 연습을 했다.
질기기로 유명한 남편은 하루에 한 시간씩 하늘이 쪼개져도 연습을 하더니 유명한 성가 작곡자인 지휘자 목사님은 2주전부터 남편을 예배시간에 도우미? 로 쓰기 시작하셨다. 트럼핏이던 색서폰이던 구별 없이 내겐 ‘나팔’로 불리는 이 악기들은 연습할 때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완성되지 않은 음악은 소음공해 수준이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쓰거나 해야 한다.
남편의 취미생활은 실로 다양해서 오리발과 산소탱크를 갖추어 스킨스쿠버를 나갔었는가 하면, 아마추어 햄(무선통신)을 한다고 온갖 통신장비를 들여놓고 집안을 FBI의 수사국처럼 무선음으로 뒤덮더니, 승마클럽에 들어 말도 타다가, 위험한 산비탈에서 더트 바이크도 타다가 이제는 나팔이다. 그래도 한가지 경비행기 조종이 남았다고 한다.
스킨스쿠버를 위험하다고 반대하던 내게 평생 싱싱한 생선을 공급하겠다던 약속은 물 건너갔고, 무선 통신의 후유증으로 방송국 철탑 같은 안테나가 뒷마당에 애물단지로 남아있다. 그나마 말을 안 산 것이 다행이랄까?
시간에 늘 쫓기는 남편이 오래도록 공을 들이는 취미생활이 나팔불기이다. 어려서부터의 소원이 악기 다루기였다는데 소원을 풀고있는 셈이다.
평생 취미로 ‘독서’라는 정적인 습관을 가진 내겐 남편의 동적이고도 다양한 취미생활이 못 마땅하다. 어딜 가도 가방 속에 들어있는 책만 꺼내면 몇 시간은 문제없이 버티는 사뭇 경제적이기도 한 ‘독서’. 하지만 아들아이는 제 아빠를 흉내내며 그대로 배우고 있으니… 요즈음은 집에 트럼핏 주자가 한 명 더 늘어났다. 피아노도 바이얼린도 마다하던 아들아이가 남편의 나팔불기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젠 둘이 집안이 떠나가라 쇳소리를 삑삑 내는 것이다.
나팔소리에 노이로제 증상을 보였던 나는 신경질을 부려대고 악을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예배시간에 연주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연습을 체크한다. 연주회에 아이를 내 보내는 조바심난 엄마처럼... 지난주 예배시간에 불던 나팔소리는 집에서 연습 할 때보다 훨씬 못했다. 남편 말이 너무 떨리고 손에 땀도 나고 장난이 아니더라나? “크게 자신 있게 오케이?” 하면서 마치 남편의 매니저라도 된 듯 코치하였다. 예배시간의 나팔불기를 남편은 기도의 응답이라며 사뭇 들떠 있지만, 내겐 또 하나의 시험으로 식은 땀 나는 일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외 음악당인 할리웃 보울이 있다. 가끔 그곳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가는데, 차를 주차하고 지하도를 건너려면 입구 쪽에 나팔부는 흑인 할아버지가 있다. 모금을 위한 모자도 앞에 두고... 거리의 악사치고는 솜씨도 훌륭해서 수입도 괜찮아 보인다. 지폐가 모자에 꽤 많이 담겨있다. 볼 때마다 남편에게 말했다.
“저 자리는 당신자리야. 흑인 할아버지가 이미 연로하셨으니.” 집에서도 가깝고, 가끔 틀려도 부담 없는 자리라며 오래 전부터 세뇌시키고 있다. 나팔부는 남편에게 양쪽 집안에는 없는 화류계라며 놀리던 나는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까보다. 남편의 나팔은 우리의 노후대책도 될 수 있으므로.
찬송가를 연습하는 남편 옆에서 잠시 휴식을 청하며 신청 곡을 주문한다. 색서폰으로 부는 ‘땐서의 순정’. 순진한 남편은 늘 구박하던 마누라가 신청 곡까지 신청한데에 고무되어 구성지게 한 곡조 불러준다. 집 천장에 번쩍이며 돌아가는 캬바레 조명도 설치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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