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은 TV가 불러일으킨 책읽기 열풍에 휩싸여 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점화시킨 독서열기로 서점가에서 먼지를 덮어쓰기에 딱 알맞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들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진기한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윈프리는 최근 도서 소개 프로그램을 축소한다고 발표했으나 열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그러들기는커녕 ‘투데이’쇼 등이 4개의 TV독서클럽 프로그램을 조직한데서도 알 수 있듯 오히려 확산중이다.
출판업계는 수백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독서클럽들이 매스컴의 힘을 빌어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양서들을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며 이들의 역할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TV의 영향력에 힘입어 불붙은 독서 붐은 미국인들의 지적 허영심에 뿌리를 둔 거품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 좋은 예가 스티븐 울프램이 출판사를 잡지 못해 자비로 찍어낸 ‘새로운 종류의 과학’이다. 출판 이후 독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이 책은 ‘USA 투데이’ 도서클럽의 추천을 받은 뒤 초판 5만권이 곧 매진됐고, 수주동안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명단에 머물렀다. 그러나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책을 구입한 사람은 많았지만 1,200페이지에 달하는 이 과학서적을 실제로 읽은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난해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스티븐 호킹스의 과학도서 ‘시간의 소사’처럼 책장 장식용으로 전락했을 것이라는 견해다.
고전 명작들의 줄거리만을 요약해 책으로 엮어내는 클리프노트 문고 등의 출판사들이 주 공략대상을 학생에서 성인으로 확장한 것 역시 독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박학해 보이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들도 이같은 속물근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칼럼니스트 리처드 리브스에 따르면,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기자들로부터 "요즘 어떤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자 "너무 바빠 독서할 틈이 없다"고 대답했었다. 그의 솔직한 답변이 잡지 칼럼에 실린 후 포드는 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백악관측은 이따금씩 포드 대통령의 독서명단을 발표했다. 물론 포드 대통령이 실제로 명단에 올라간 책들을 읽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평범한 사람임을 자부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도 최근 지식인으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그리스인’(Greek)을 ‘그리스식’(Grecian)이라고 표현하는 등 망신을 당했으나 최근 고대 희랍 철학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애담 스미스, 키케로, 토크빌 등의 고전 명서를 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부시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는지 기자들에게 열심히 귀띔해 준다.
관계자들은 미국인들이 행동적이면서도 학구적인 대통령을 선호한다며 존 케네디 대통령이 누리고 있는 식지 않은 인기는 그가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어뢰공격으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전쟁영웅인 동시에 ‘용기의 얼굴’로 퓰리처상을 차지한 집필가라는 사실에 바탕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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