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휴가 때면 여행을 떠났다. 이곳저곳 트레킹도 많이 다녔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와서 아련히 그립기도 하고 또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꼽고 싶다.
나는 영원한 뻬레그리노(Peregrino)가 된 것 같다. ‘뻬레그리노(Peregrino).는 스페인어로 ‘순례자’라는 뜻이다. 마음은 여전히 그 길 위에 가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산티아고에 다녀온 분들은 누구나 산티아고야말로 긴 인생길에서 그 무엇을 얻고 그 누군가를 만난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까미노길에 코끝을 스치고 간 바람의 향기, 외줄기 길 속에서 느꼈던 고독의 아름다움, 수많은 상념 속에 내안의 나를 만났던 순간들, 그리고 순례자들과 울고 웃으며 나누었던 감정의 기억들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였다.
산티아고는 한번 마음먹으면 꼭 가게 되는 길이요, 한번 다녀오면 다시 가게 되는 가슴 뛰는 길인 것 같다. 딱히 설명할 말도 없고 글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도 없다. 스스로 숭고해지고 고독해지며 뭉클해지는 누군가의 부름의 길인 것 같다.
지난 2024년 한국일보가 창간 55주년으로 기획한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마음속에 간직해왔던 버킷리스트였으나 감히 엄두를 못내 실행하지 못했었는데 언론사의 행사라 기대 속에 참가했다.
첫날 호텔에서부터 기대가 현실로 나타났다. 마드리드 중심가에 위치한 5성급 호텔 유로스타 마드리드 타워 호텔. 미국과 한국의 많은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다녔지만 이런 럭셔리 호텔에 투숙해 본적이 없었다. 팀 가이드도 18년 가이드 생활을 했지만 이런 호텔은 처음이라고 했다. 참가자들도 첫날부터 이런 호텔에 투숙하면 그 다음에는 어떡하느냐며 한국일보 인솔자에게 진심어린 조언도 건넸다. 30층 식당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시며 일출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음날, 죽어가는 스페인의 북부도시 빌바오를 살려낸 구겐하임 미술관 방문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순례 여행의 덤이었다.
순례 1일차.
사진과 같은 고즈넉한 풍경의 프랑스 생장 피드 포드에서의 순례여권 발급, 피레네 산맥 중턱에 자리한 순례객들의 첫 휴식처 오리손 산장에서의 에스페레소 한잔, 노란 들풀들이 봄바람에 하늘거리고 수많은 양 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피레네 산맥의 정경은 지금도 활동사진처럼 생생하다.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머물며 집필 활동을 했다는 팜플로냐에서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 헤밍웨이 동상까지 세워놓은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는 분노와 원한이 배려와 사랑으로 변한다는 용서의 언덕을 지났다. 메세타 대평원의 끝없는 길을 걸으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며 걷고 또 걸었다.
순례길 5일차 부르고스.
성(Castle) 또는 수도원을 개조해 호텔로 만든 국영 파라도르(Parador) 호텔 투숙은 참가자들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간의 호텔들이 모두 유로스타 호텔이라 좋았지만 산 정상에 위치한 이 파라도르의 투숙은 여행객 모두 왕과 왕비가 된 듯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순례길 8일차.
비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 성당을 찾은 거지에게 신부가 빵과 포도주를 건네자 살과 피로 변했다는 신화가 있는 오세이브로 대성당. 그리고 성당 앞 한 식당의 씨레기국(한국사람들이 씨레기국 같다고 해서 붙인 말) 한 그릇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순례길 카페와 식당에서 목을 축이며 다양한 형태의 세요(Sello, 도장)을 받는 즐거움, 버스를 타고 온 시니어들과 만나는 순례길 중간 재회,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과 ‘까미노’라며 나누는 인사 등등은 다른 여행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이색적인 정겨움으로 두고두고 생각나는 추억들이다.
순례길에서 겪은 한 조각 한 조각의 추억은 순례길을 한번 다녀오면 다시 가게 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필자는 올 순례 여행에도 참가 신청서를 냈다..
13일의 대장정을 마치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입성하는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거대한 콤포스텔라 광장에 서자 벅차오르는 감정은 울컥함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비장함이 온 몸에 퍼졌다. 그리고 광장에 누워 두 팔과 다리를 대자로 뻗어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나는 숭고한 순례자였다고, 그리고 나를 찾았다고…
지구의 끝으로 불렸다는 피니시테라, 포르투갈 최고의 관광지로 떠오른 포르투 관광은 한국일보 순례여행의 보너스로 제공된 특별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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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김 / L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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