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쌀이 남아 돌아가 재고 쌀을 사료용으로 방출할까 하고 북한은 7월부터 임금과 물가인상조치로 쌀 가격이 550배로 뛰었다고 한다.
지난 주 뉴욕의 한 단체는 서해교전 사태 희생자 유족 기금 모금 운동을 벌였는가 하면 또 다른 한 단체는 재고 쌀 400만 석을 굶주리는 북한동포에게 보내길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했다.
상반된 이 두 단체의 활동을 보며 나는 지난 주말을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웠다.깡보리 밥을 한 통 가득 하여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호박잎·깻잎·고추를 송송 썰어 끓인 된장찌개를 놓고 종일을 먹었다.
누구나 “건강식이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보리가 가난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보리는 역시 거무튀튀하고 입안에서 까끌 거리는 것이 쌀밥처럼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았지만 “사람이 먹는 쌀을 가축 먹이로 쓰다니”, “한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았다고” 하면서 씩씩대고 밥을 넘기었다.
6.25 때는 이런 보리마저 없어서 송기를 벗겨 만든 송기떡, 칡뿌리를 캐어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데, 70년대 들어서야 ‘보릿고개’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봄철이 되면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도 끼니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고개보다도 넘기가 힘들다는 그 춘궁기에 ‘하얀 이밥에 고깃국 한번 먹었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는 말도 있었건만 이제 그 문장은 전설이 되어버렸나?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많은데도 말이다.
우리 세대는 ‘쌀 한 톨이 농민의 땀 한 방울’이라는 세뇌 교육을 밥상머리에서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쌀을 씻다가 개수대에 흩어지는 쌀알을 보면 귀찮아서 물로 흘려버리다가도 이러다 내가 죄받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밥을 담는 식기도 그렇다.
겨울이면 언제나 아랫목에 깔려있던 이불 속에는 저녁 식사시간까지 안 들어온 식구들의 밥이 담긴 스텐 그릇이 놓여있었다. 식기라고는 떨어뜨리면 왕창 깨지는 사기 그릇, 제사나 설날이 다가오면 짚 뭉치에 재를 묻
혀 닦던 무거운 녹 그릇을 쓰다가 반짝거리면서도 탱 하니 소리도 경쾌하고 가벼운 스텐 그릇이 나오니 그야말로 한국 가정에 식기 혁명을 가져왔다.
아줌마들은 스텐레스 계도 들어 모든 가정의 밥상 위 그릇을 바꿔버릴 정도였다.그러나 스텐 그릇은 나왔지만 보온 밥솥이 아직 나오기 전이니 식구 수대로 밥을 담아다가 아랫목에 놓고 이불로 덮어 놓아두던 그 시절.
주로 술 드시고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나 대학 입시 공부하느라 늦게 오던 큰오빠의 밥그릇이었는데 어린 나는 바로 위 언니, 막내 남동생과 이불 속에서 장난을 치다가 밥그릇을 차버려 밥 뚜껑이 벗겨져 달아나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불과 밥 뚜껑에 다닥다닥 밥알이 묻으면 엄마에게 들킬 까 조바심이 일면서도 킥킥거리며 밥알을 떼어먹기 바빴다.
그 밥그릇에 담긴 밥도 새하얀 쌀밥은 가마니로 쌀을 사다먹는 부잣집이라야 가능했다. 쌀은 됫박이나 종이 봉투 쌀을 사다 먹는 집이 대부분이니 쌀밥에 보리를 섞어먹는 집이 많았다. 그리고 예민한 사춘기를 혼식 도시락 검사를 당하면서 건너왔다. 미국 사는 나도 이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데 농업정책을 관장하는 한국 정부관리들은 이러한 때를 잊어버린 것 같다.
논밭을 효율적으로 관리 못한 정부의 농업정책을 탓하고만 있기에는 가을이 문턱에 다다랐다. 햅쌀이 나오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더 이상 쌀 문제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제3세계 빈민들에게 주자니 수송비가 만만찮고 북한 동포 주기에는 군량미로 쓸까 걱정이 되어 밤잠을 이룰 수 없다면 전국의 고아원, 소년소녀 가장, 결손가정, 도시 빈민들에게 나눠주자.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쪽은 쌀을 버리고 또 다른 한쪽은 굶어죽었다는 부끄러운 역사가 남겨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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