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는 스트레스를 받을까. 답은 안 받을 것 같다. 이유는 무관심, 무책임, 무열정, 무간섭, 무희망 등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치고는 참으로 부러운 자유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으로서의 제 기능을 못하고 살아가니 스트레스는 안 받는 대신 기쁨도 즐거움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또 희망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니 가치 없는 생을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사람들 즉, 거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평안해 보임은 역설이다.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겠다”란 표현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완벽하고 빈틈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말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흠 잡을 데 없는 사람들. 그들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어 좋은 봉급을 받는다. 그들은 좋은 동네나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항상 얼굴에 활력이 넘친다. 정말 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들만이 갖고 있는 불행이 있고 스트레스가 있다. 오히려 그들의 속마음은 많은 업무와 과중한 책임, 끊임없는 도전,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 불안감,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 의무감 등으로 인해 까맣게 변해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에겐 거지 철학이 통하지 않는다.
퀸즈 써니사이드에는 고정 미국 거지가 몇 사람 있다. 한 사람은 흑인이고 또 한 사람은 백인이다. 흑인도 백인도 아닌 한 사람은 몇 년째 전철 밑을 서성거리며 배회하더니 요즘 보이지를 않는다. “어디 가서 죽지는 않았겠지” 마음속으로 걱정해 본다.
그런데 남은 거지 둘 중 백인 거지 한 명은 전철 밑이 그의 거처다. 그 거처는 매일 장소가 틀려지지만 몇 블럭 안에서 왔다 갔다 한다. 말이 거처지 전철 기둥 밑에 박스를 바닥에 깔고 지붕도 없이 그는 앉아서 담배도 피우고 먹기도 한다.
이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몇 번이나 그 옆을 지나쳤지만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거나 돈을 요구하는 행동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속으로 늘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에게 돈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지나지만 한 번도 주어본 적은 없다. 잘못 주었다가는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평안해 보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얼굴이 너무나 평안해 보이니 속으로는 “거지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정말 저 사람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끼는구나” 혼자 생각도 해 본다.
또 흑인 거지 한 사람은 숙소가 정해진 곳이 없고 밤에는 나타나지를 않다가 낮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도 백인 거지와 마찬가지로 구걸행각은 하지 않는다. 목욕을 여러 날 못해서인지 가끔 사람이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모퉁이에 서서 이를 잡는 모습을 보곤 한다.
머리는 산발이라 이가 더 있을 것 같은 그는 가끔 배를 들어내 긁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안하게 할 때가 있다. 이 사람을 볼 때도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라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도 너무나 평온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백인 거지와 흑인 거지 두 사람에게서 이렇듯 똑 같은 평안한 얼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은 신기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들은 모든 걸 버렸으니 소유욕으로 인해 발생되는 단 1%의 스트레스도 없어서 그런 것일까.
모게지, 랜트비, 보험비, 개스비, 전화비, 전기비, 교육비, 연금비, 등등 “빌빌 내다가 빌빌 댈 수밖에 없는 미국생활”에 등이 휘어지는 이민의 삶이다.
자유가 그립다. 어떨 때는 전철 밑에 사는 그 거지들의 평안한 얼굴 모습이 얄미울 때가 있다. 거지 철학은 철저한 ‘비움’에 그 모습이 있다. 거지에게서 평온함을 발견함은 그들은 소유 없이 살아가기에 그렇다. 소유 없고 소유할 욕심도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을 게다. 그러나 그들에겐 희망과 미래가 없고 즐거움도 기쁨도 없을 게다. 또한 그들에게선 생
의 의미마저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미래 없는 무관심과 평온함 보다 미래와 비전이 있는 스트레스를 택하여 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은 도전 아니
던가. 그래도 거지 얼굴의 평온함이 가끔 뇌리를 스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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