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15)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오래된 물건에는 흠이 나기 마련이다. 특히 깨지기 쉬운 도자기는 상처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못쓰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을 때는 애교로 봐 넘기다가도 일단 거래에 들어가면 작은 흠도 집요하게 따지고 들기 마련이다. 안 산다는 게 아니다. 이런 흠이 있으니 유리한 위치에서 가격을 깎아 내리자는 것이다. 때문에 소장자는 도자기의 흠을 알아두고 여기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사유를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터무니 없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 흠(Damage)를 보는 눈과 평가
연륜이 오래된 토기(土器)나 출토품(고분이나 땅에서 파낸 골동품)에 대해서는 흠을 보는 안목이 다소 너그럽다. 오랜 연륜, 그리고 출토 과정에서 ‘흠’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출토품이라면서 윤이 나고 완벽을 유지하고 있을 때 모조품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도자기(도기와 자기)의 ‘흠’은 매우 민감하다. 도자기를 대할 때는 우선 출토품과 전수품으로 구분되는데 출토품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전수품은 사대부나 양반 집안의 장롱을 거쳐 후세에 물려온 도자기로서 그 보전 상태는 지극히 양호하다.
도자기는 그 자체의 기풍이 완벽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거기에 비례해 ‘흠’에 대해서 몹시 신경질적으로 따지고 든다. 골동품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도자기라면 그 물건이 출토품이냐 아니면 전수품이냐 하는 정도의 배경 스토리는 믿든 말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골동품에 나름대로의 족보가 있을 때 그 도자기가 가지는 어느 정도의 ‘흠’은 족보로서 커버되는 일이 허다하다.
보통 그림 1(접시)에서 보는 Y자 금 정도의 ‘흠’이라 할 때 거래시 20% 정도의 가격 하락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접시에 얽힌 흥미있는 배경 이야기라도 있다면 Y자 금정도의 흠은 무시당한 채 거래가 성립된다.
■ ‘흠’의 유형
도자기의 ‘흠’은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흠’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A. 선천적 흠(Born Damage)
원형을 만들어 가마에 들어가기 전 생긴 ‘흠’(손자욱, 긁힌 것, 이글어진 것 등등)을 모르고 그대로 구워낸 것을 말한다. 통상 이런 물건은 깨버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검사 관문을 용케도 피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물건도 허다하다.
선천적 ‘흠’ 가운데 또 다른 유형은 가마 속에서 굽는 과정에 생긴 ‘흠’(유약락하, 혹 쓰레기 골짜기 등 그림 1,2 참고)
이 있다. 이렇게 가마 속에서 생긴 ‘흠’도 똑같이 일반적인 ‘흠’으로 보느냐 하는 논쟁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골동품이 가지는 희소성에 역점을 두고 수집하는 사람 가운데는 선천적 ‘흠’이 있는 도자기만을 골라 수집하는 사례도 허다하고 거래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완벽을 요구하는 도자기의 성품으로 볼 때 이런 가마속의 ‘흠’도 ‘흠’인 것만은 분명하고 가격에도 거래에 따라 영향을 주고 있다.
B. 후천적 ‘흠’(Second Damage)
가마 밖에서 생긴 ‘흠’을 말한다. 이런 ‘흠’은 복원을 하지 않고는 거의 거래가 불가능하다. 골동품이 상품으로 거래되면서부터 골동품 복원은 이루어졌고 복원 기술은 완벽을 추구하면서 급진적으로 발달되어 왔다. 문제는 거래시 복원 사실을 밝히느냐, 아니면 비밀에 부쳐 두느냐에 있다. 당연히 밝혀야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복원 상태가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사고 파는 당사자들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복원가는 자신이 복원한 골동품의 복원 기밀을 절대로 누설할 수 없다. 골동 복원가도 아티스트로서 복원 작업도 하나의 예술적 작품활동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백인 남자가 벽걸이식 대형 도자기 접시를 나의 스튜디오에 가져왔다. 도자기는 18세기 영국산 본 차이나였다. 직경이 25인치 정도니 보기 드문 대형 접시다. 산업혁명 이후 농토에서 농민은 쫓겨나고 양떼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넘치는 양을 가공 처리하는 공장에서는 양 뼈가 쏟아져 나오고 그 뼈를 섞어 만든 도자기가 바로 본 차이나(Bone(뼈) China)의 시조이다.
그런데 이 본 차이나 대형 접시는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이것은 강철사 줄로 붙어 있다. 꼭 운동화 끝을 매놓은 듯, 그 솜씨가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스태이플로 찍어놓은 것 같다. 바로 18세기식 복원인 것이다.
백인 남자는 이 강철사 줄을 뜯어내고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완벽한 복원을 원하고 있다.
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했다. 이것은 18세기에 복원한 것으로 이 철사줄 복원 자체가 훌륭한 예술이요, 이 접시를 한층 고풍스럽게 하고 있으니 절대로 뜯지 말고 이대로 보존하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이 사나이는 막무가내다. 기어이 철사줄을 뜯어내고 ‘흠’이 보이지 않도록 완벽하게 복원해 달라는 것이다.
생떼에 가깝다.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 대신 홧김에 정상 가격의 10배 가까운 복원비를 청구했다. 아주 만족해 한다. 나는 사나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친구의 화폐 개념과 나의 화폐 개념과는 다를 지 모른다고.
골동품이 가지는 ‘흠’은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다. 골동품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인 연륜, 희소, 고전 속에 Damage를 조화시켜 나갈 때 한층 그리고 또 다른 미(美)와 가치를 창출해낼 수도 있다는 것을 가슴 속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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