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한국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20~30년 전에는 한길이나 지하철 안에서 한국사람을 보면 서로 반가워 했다. 한쪽에서 먼저 “한국 사람이예요?”하고 물으면 금방 대화가 되어 언제 왔느냐, 어디를 가느냐고 관심을 표시했고 길안내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자기의 돈을 들여가면서 안내해 주었다.
뉴욕의 한인업종인 청과업은 70년대초에 나타난 새 업종이었다. 당시 청과업을 시작한 몇몇 사람이 장사가 잘 되자 다른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가게를 잡아주어 청과상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돈을 꾸어 가게를 차린 사람은 계를 만들어 돈을 모아 빚을 갚았는데 계가 깨졌다는 계파동도 별로 없었다. 한인들이 돈이 없었고 생활의 여유가 없었던 그 때는 인정과 의리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런데 한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정이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음 온 사람이 뭣도 모르고 “한국사람이예요?”하고 물으면 “그런데, 왜요?”하고 귀찮다는 듯이 대하는 대답을 듣기 일쑤였다.
한인들간에 동종업종의 경쟁관계가 생기면서 한인이 한인을 경계하는 사태가 벌여졌다. 우연히 한인가게 앞을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한인주인이 경계의 눈초리를 떼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다. 일찍 미국에 온 사람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았으나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인업소에서 고용한 한인종업원 중에서도 불법체류 한인들은 차별을 받았다. 한인이 한인을 착취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한인이 모여 살고 있는 곳에는 한인상가가 형성되어 한인들의 일상생활이 편리해졌다. 한인을 상대하는 한인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서 부터 식당, 식품점, 각종 소매상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굳이 영어를 하지 않아도 생활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가게에서 물건을 산 후 가격이나 품질이나 애프터 서비스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한인가게에서 물건을 샀다가 후회하고 다시는 한국가게를 거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인사회의 변모 가운데 특히 눈에 띄게 나타난 변화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한인들 중에는 미국의 기준으로 따져서 상류층으로 손색이 없는 그룹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이민 초창기처럼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한인타운의 한인상가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다고 하나 정작 돈 많은 상류층은 한인경제 밖에서 소비생활을 하는 경향이 많다. 이들의 기피현상은 무엇때문일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한인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한인경제가 지금보다 발전하려면 이렇게 한인경제를 떠나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급선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외국인들도 한인경제 안으로 발길을 돌리게 해야 한다.
한국식당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한인 전자제품점에서 물건을 사고 한인여행사에서 항공권을 구입하는 외국인들이 더 늘어난다면 한인경제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인들이라면 믿어도 좋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한인사회의 신뢰성은 비단 한인상가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인들끼리 서로 믿을 수 없게 되다면 미국 속의 한인사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먹고 살아가는데 한인사회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수와 부의 양으로 세를 따지는 미국에서 한인사회의 힘을 모으면 집단적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그 한인사회의 접착제는 신뢰이다. 신뢰가 없으면 한인들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잃어 흩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 한인사회에서는 한인들끼리 신뢰하고 그 신뢰성이 외국인들에게 미치도록 해야한다. 한인들끼리 속이지 말고 착취하지 말고 서로 도와줌으로써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하자.
한인사회의 단합이란 과제와 또 요즘 등장하고 있는 한상 네트웍이니 한민족공동체니 하는 거창한 구호도 한인들이 서로 믿지 못한다면 모두 헛공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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