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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가신지도 벌써 한달여 지났다. 월드컵을 계기로 폭발적인 국민적 성원과 단합, 질서의식을 확인했고, 한국 정부와 사회 지도층들은 그 열기를 경제 도약에 접목해 이른바 ‘경제 4강’으로 올라서자고 다짐하고 있다.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한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졌고, 이를 통해 선진국으로 올라서자는 것이다.
그런 다짐도 잠시이고, 벌써부터 서울의 정치판은 대선을 앞두고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아들 문제로 대통령을 진흙바닥으로 끌어내리더니, 이젠 야당 대통령 후보가 아들의 군입대 문제로 흙투성이가 됐다.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브라질, 독일, 터키가 4강에 진출했다. 그들 나라에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브라질과 터키는 경제가 파탄지경으로 치달아 이달초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인은 정치 싸움에 있다.
우승국 브라질은 오는 10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현 대통령이 3선 금지조항으로 출마하지 못하자, 여당과 야당에서 후보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다. 그중 여론조사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라는 긴 이름의 후보와 시로 고메스 후보가 1, 2위를 달리고 있다. 두 후보 모두 노동자와 빈민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좌익인사다.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좌파 후보들이 선두를 달리자, 해외자금이 대규모로 탈출, 현지 헤알화가 급락하고 국채가산금리가 무려 20% 이상 치솟았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못본척했던 미국은 남미 최대국가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 지난 7일 IMF를 앞세워 3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위기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IMF는 20%인 60억 달러를 선거 이전에 지원, 국가 파산을 막아주겠지만, 나머지 80%는 선거후 당선자가 개혁조건을 수행한다는 약속을 할 경우에 지원한다는 조건부다.
좌파가 정권을 잡더라도 IMF를 통해 거시 경제 운용에 간섭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거부할 경우 브라질은 치욕스런 모라토리엄(해외채무지급
유예)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터키의 경제불안은 의회가 뷜렌트 에체비트 총리 정권을 와해시키기 위해 오는 11월 조기총선 실시를 의결하자, 총리는 야당으로 돌아선 케말 데르비스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촉발됐다. 집권기간 중 310억 달러의 IMF 자금 지원을 받은 에체비트 정부는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의 전초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IMF 자금 11억 달러를 지원했지만, 정치불안을 두려워하는 해외자금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월드컵 4강국 가운데 세나라가 연말의 중요 선거일정을 앞두고 있다. 그중 브라질과 터키는 정쟁 때문에 경제가 나락에 떨어졌고, 한국은 비교적 건실한 경제를 꾸려나가고 있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 없는 실정이다.
월드컵 4강에 선진국 독일이 포함된 게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다. 독일은 10년전에 분단을 청산하고 통일 대업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서독은 통일 후 가난한 동독 주민에게 사회복지 혜택을 부여하고, 동서독 화폐를 1대1로 교환하면서 입은 재정 부담으로 10년간 경기침체를 경험했었다.
북한에선 최근 빠르게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베이징의 외국 대사관에선 한국에 가려는 탈북 주민들의 진입사건으로 시끄럽다. 과거를 돌아보면 공산국가들이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붕괴됐고, 동독이 와해되기 직전에 수십만명의 주민이 서독으로 집단탈주한 전례가 있다. 지금 북한의 문제가 10년전 동독 붕괴 직전의 현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월드컵 4강국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서, 몇가지 배울 점이 있다. 첫째, 정치 싸움으로 경제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둘째, 갑작스런 북한붕괴에 대비 단계적인 대북한 경제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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