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유물 미국 부호들의 대저택
▶ (12) 허드슨 강변, 린허스트 J. 굴드 가
제이 굴드는 자신과 자기 가족은 사랑하고 아꼈으나 이웃과 친구를 배반하고 차버리는 행위가 다반사였다.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면서 치부하는 바람에 철면피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무역은 현금이 아닌 금으로 결제를 하였다. 돈버는데 귀신인 그가 이 점을 놓칠 리 없었다. 금을 매점매석하면 큰 돈을 벌 것이라고 판단, 엄청난 액수의 금을 사들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랜트 대통령 정부에서 경제담당을 하는 관리를 매수, 주요 정책을 미리 알아내 돈을 벌었다. 그는 결국 1890년도의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증권 스캔들까지 일으켰다.
굴드는 석탄을 캐고 이것을 운송하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그의 철도로 소 떼들을 운반하면 큰 돈을 벌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져 캔사스에서 중서부로 소를 실어나르며 치부했다. 굴드가 철도를 연장하려고 커다란 바위에 Jay Gould라고 써놓은 표지판이 시카고의 롤링 메도우 공원에 있는 것을 기억한다. 그곳까지 철도를 연장하려고 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굴드는 허드슨 강변에 저택을 마련했다. 아침에는 뒤뜰에서 150피트짜리 요트를 타고 월스트릿으로 출근했다. 저녁에는 다시 배를 타고 뒤뜰에서 내려 퇴근하곤 했다.
아쉬울 게 없을 정도로 돈을 벌게 되자 뉴욕 상류사회 사교클럽 구성원이 되고 싶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당시 월돌프 아스토리아의 여주인인 Mrs. Astor가 이 클럽의 회장이었다. 그녀는 제이 굴드의 청을 단번에 거절했다.
사교 클럽이 좌절되자 다른 부자들 못지 않게 호화스런 요트를 가진 것을 이유로 뉴욕 요트클럽에 회원 가입 신청서를 냈다. 이곳에서도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요트 클럽은 “오로지 신사만이 회원이 될 수 있다”고 굴드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같은 에피소드에서 보듯 그는 돈은 많았지만 형편없는 인간으로 평가당했다.
이웃도 친구도 없이 오로지 눈 앞의 이익과 가족만을 챙긴 비인간성을 하늘이 노여워 했는지 단명했다. 56세로 세상을 뜨면서 욕을 들어가며 모은 돈 77억 달러를 자녀에게 넘겨주었다.
아들인 하워드 굴드는 롱아일랜드에 저택도 지었다. 그러나 프랑스 출신 부인이 탐탁치 않게 여기자 팔아버렸다. 허드슨 강변의 성곽같은 대저택인 린드허스트 저택을 구입해 온 가족이 모여 살았다. 뒤로는 허드슨강이 내려다 보이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다.
이 저택은 뉴욕시장을 지낸 윌리암 폴딩의 집을 알렉산더 데이비스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하여 지었다. 나중에 메릭이라는 상인이 구입, 정원을 꾸미고 굴드에게 판 것이었다. 이때부터 굴드 가족이 약 80년을 살아오면서 집안의 유리를 가지각색으로 채색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했다.
굴드의 손녀딸인 헬렌이 주로 이 집에서 살았다. 동생 안나는 프랑스 백작에게 출가해 그곳의 성과 같은 저택에 거주했다. 안나는 나중에 뉴욕으로 돌아와 맨하탄 플라자호텔에 머물다 언니 헬렌이 죽은 뒤 국립 역사보전협회에 기증해 일반에 공개했다. 입장료는 10달러이고, 저녁 4시에 문이 닫힌다.
할아버지 굴드는 1전을 아까워하며 돈을 모았다. 그러나 손녀인 헬렌 굴드 쉬퍼드는 이 돈을 각종 자선에 보람있게 사용했다. 원래 자신의 아이가 없어 지체 부자유 어린이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친자식처럼 길렀다. 그들을 위해 집을 늘리고 방안의 유리창문을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색깔을 칠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수영장도 만들고 뒷마당에 볼링장과 겨울에도 식물을 기를 수 있도록 거대한 그린하우스를 지었다. 팔각정도 예쁘게 지어서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 찾아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I-95 북쪽으로 뉴잉글랜드를 향해 가다 뉴욕 고속도로(Exit 21) 287 West로 Tappan Zee 다리쪽으로 가면 9N, 9S, 9A 그리고 Exit 8, 7, 6, 5, 4, 3, 2, 1 다음에 Exit 9로 나온다.
Route 119 남쪽으로(Broadway) 약 2마일쯤 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저택 입구 하얀 사각형 표지판에 Lyndhurst라고 써 있다.
<주의> 이 곳은 87번 도로와 287이 만나는 곳이므로 Exit 9은 톨부스 가기 직전의 Exit이다.(Last Exit Before Toll).
굴드의 손녀들은 이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할아버지 굴드의 고향인 뉴욕의 락스베리에 매장되었다. 필자는 잠시나마 굴드가 좋은 일을 하여 마을 이름을 굴드보로라고 하던 곳을 답사하기 위해 이틀을 헤맸으나 결국 못 찾고 말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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