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 허드슨에 거주하는 빌 라웃은 누가 보기에도 남성미 만점의 ‘터프가이’다. 건축회사를 소유했던 빌은 전기에서 배관까지 수리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다. 월요일 저녁마다 친구들과 함께 풋볼경기 시청을 즐길 정도로 취향도 남성적이다.
그러나 은행장비회사의 매니저인 아내 셰일라가 세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그는 대부분 남성들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결정을 해야 했다. 셰일라의 직장에서 건강보험이 제공되므로 빌은 회사를 포기하고 세 쌍둥이를 돌보는 가사전담 남편이 되기로 결정했다.
지난 5년간 사브리나, 그랜트와 오스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음식을 먹여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 빌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최고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빌과 같이 가사를 전업으로 삼은 남편들이 미국에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이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인터넷에 ‘남성주부’(stay-at-home dad) 전용 웹사이트가 등장하고 서로 서로 격려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네트웍이 전국에서, 그리고 지역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오는 11월 일리노이 글렌뷰에서 열리는 연례 집회에는 23개 주에서 100명의 ‘남성 주부’들이 참석할 전망이다.
센서스 통계에 따르면, 오직 가사를 맡기 위해 일하지 않는 아버지들이 10만8,000명으로 90년의 1만1,000명에서 거의 10배로 늘어났다. 이는 아내가 ‘바깥일’을 맡는 은퇴자 및 장애자 남편들 52만9,000명을 제외한 수치다. 남성 주부들의 인터넷 정보센터 슬로우래인 닷컴(slowlane.com)은 지난해 450만회의 접속을 기록, 전년에 비해 100만이 늘어났다. 관계자들은 99년 배우자보다 수입 능력이 많은 여성이 1,000만명에 달하는 현실을 볼 때 가사를 돌보는 남편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의 역할에 대해 전통적인 선입관이 있는 사회에서 남성 주부들은 이웃의 놀림이 되거나 다른 여성 주부들로부터 소외당하는 등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발표된 국립보건연구소(NIH) 연구서에 따르면 남성 주부들이 ‘보통 남편’들보다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무려 82%나 높다. 일부 가정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부부가 몇 년에 한번씩 가사업을 번갈아 맡는 방안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과 네트워킹이 남성도 여성 못지 않은 주부로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남성 주부들은 말한다. 물론 장점도 있다. 예일대의 카일 프루엣은 지난 10년간 남성주부 가정을 연구한 결과, 이들 가정의 어린이들이 일반 어린이들보다 지적 성장 및 사회적, 정서적 성장이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 가정의 자녀들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키운다는 것이다.
96년과 97년에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일반 가정에서 어린이가 다쳤거나 두려울 때 80%가 엄마를 찾는 반면 남편이 주부인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빠를 찾는 경우가 반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가정의 경우, 여성 주부가 가사 일의 대부분을 전담하지만 남성 주부 가정의 경우, 아내가 직장에 돌아오면 요리 등 가사 일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들은 아내의 고역을 일반 남편들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부부관계도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텍사스 알링턴에서 3∼9세의 네 딸을 돌보는 존 하워드는 의외의 보너스도 종종 생긴다고 말한다. 하루는 그는 속도위반으로 여성 경찰관에게 걸렸는데 경관은 그가 남성 주부인 사실을 알아낸 후 티켓을 찢어버리고 경고만 주었다.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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