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은 추석이다.
뉴욕에 살면서도 고국의 명절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한인은행에는 추석을 앞두고 고국으로 송금하는 한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한인은행들은 무료 송금 서비스로 추석 선물을 주고 있다.
한가위 선물 고국 통신판매는 정육세트와 굴비·옥돔 세트가 인기이고 추석을 앞두고 판매량이 늘고 있다 한다. 부모, 가족, 친지에게 한국에 비해 가격이 싼 정육 세트 등을 너도나도 보내는 것을 보니 나도 우리 부모가 살아있다면 이러한 선물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다.
물론 한국에는 언니·오빠들이 있지만 혼자 떨어져 이민생활을 하는 동생한테는 기대하는 것도 없고 무언가를 사보내라고 부탁한 적도 없다.
늘 하는 말이 “이곳 일은 우리가 잘 하고 있으니 너는 그곳에서 잘 살면 된다”이다. 하다못해 차례상에 올릴 고기값이나 떡값도 보내지 말라고 한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부모님 기일과 명절 때 차례를 지낼 수 없고 산소를 못가는 것이다. 아마 한인들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지난 주말 추석맞이로 집안 청소를 하다가 골방 속에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앨범을 들춰보게 되었다.갓난아기였을 때 어머니 품에 안겨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대학교 때 연수회 가서 등등, 그래도 대학 졸업식에는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셔서 나란히 서서 웃으면서 사진도 찍었었는데....
앨범을 보다가 어머니가 생전에 쓰신 “그해 추석” 이라는 수필을 읽게 되었다. 80년대 초 여성지 독자 문예난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던 이 글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잡지사를 찾아가 원본을 구해 그 부분만 앨범 비닐 커버 속에 보관해 오고 있는 것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 구름이 한없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앉아 있으니 “아, 가을이구나”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가을이 오면 추석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고 어릴 적 추억이 환히 떠오른다.
소학교도 들어가기 전, 추석날 아침이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성으로 만들어준 추석빔을 입고싶어 새벽같이 일어났다.그 시절의 나는 눈이 유난히 큰데다 살결이 희고 통통했다. 옷을 입혀준 고모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배를 꾹 꾹 지르고 말했다. “배 좀 오무려라.” 그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허리띠가 있는 그 고운 옷을 아끼느라고 벗어서 콩나물 시루 위에 얹어두었다가 그만 시루 안의 물에 빠져서 고운 옷 색깔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몇 해 후의 추석은 난데없이 일본에서 온 편지와 소포를 받았다. 편지의 주인공은 일본 유학생인 고모였다.할머니와 함께 소포를 풀어보았더니 예쁜 분홍색 내 저고리감이었다. 난 그것을 들고 좋아서 팔딱 팔딱 뛰었다.
또 여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던 내가 고향에 내려와 있던 동생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여 공부를 계속 하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날도 추석 전 날이니 그 해의 추석은 진정 잊을 수가 없다.
추석이면 가까이는 20리, 멀리는 50리 밖에서 각자 자기 제사를 모시고 정오가 되어야 우리집 제사를 지내러 오던 그 많은 사람도, 꿈도, 가을을 맞는 설레임도, 지금은 추억만 가을 바람에 설레이는 갈대 마냥 어지럽게 날린다.
81년 9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가을을 타던 나의 어머니도 그 사람들을 만나러 이승을 떠나고 그 딸인 나 역시 그때의 어머니처럼, 보고싶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며 추석을 맞고있다.
가까이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한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우리는 살기 바빠서 가족에게, 친구에게 소홀히 하고 있다.
명절이 되면 없는 사람의 자리가 더 커진다. 주위의 9.11 피해자 가족이나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자. 유학생이나 편부·편모 가정, 노인 등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