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한 한인신문 가판대 앞에서 본 광경이다. 40대로 보이는 한 한인이 쿼러를 두 개 넣고 가판 박스에서 신문을 꺼내는데 한 부만 아니라 한꺼번에 서너부를 계속 집어내는 것이었다. 한 부 값만 넣고 여러 부를 꺼내는 한인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목격하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쿼러 두 닢만 주고 사면 세계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그 돈이
아까워서 한번에 여러 장을 꺼내다니... 그걸 갖다 이익을 남기려는 것일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주어 선심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보다 못해 “그렇게 많이 갖다 뭐에 쓰시려는 겁니까” 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아래위를 훑어보며 “댁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이오, 당신 일이나 똑바로 하쇼” 하면서 쥐어박았다. 신문 한 부를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를 썼는데 그것은 상관없이 오히려 말한 사람에게 싸우려 듯 시비조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조그마한 일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황폐해지겠는가.
밖에 나가면 서브웨이에서나 거리에서 동전 몇 닢을 기다리는 걸인들을 여러 명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 다 주기는 어렵지만 그 중 ‘몇 사람은 오늘 내가 만나면 주어야지’ 하며 집을 나선다는 한인이 있다. 이것이 바로 적으나마 내가 가진 것을 나눠 가지려는 아름다운 마음이 아닌가.
그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아름다운 음률로 행인을 기쁘게 하는 거리의 바이올린 악사를 첫째로, 그리고 장님 등 지체가 불편해 생활능력이 부족한 걸인의 순으로 그날 동전을 건넬 대상을 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심어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밝고 훈훈해질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지만 하찮은 것이라도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선을 행한다면 커다란 일을 이룰 수가 있다.
요즈음 한인사회가 보여준 한국의 수재민 성금 돕기 운동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비록 고국은 떠나 있지만 어떤 한인의 말처럼 비록 한국의 수도 서울은 지방에 물난리가 났는지, 가뭄이 났는지 아랑곳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조그마한 정성을 모으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붙은 불로 한인사회에서는 몇 십만 달러라는 거액이 모였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은 수재민들의 아픈 가슴을 보듬는데 적지 않은 보탬이 될 것이다.
미국 사회가 9.11 테러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우리 한인은 어떠한가. 미국은 ‘테러 1주년’이다, 또 다시 ‘전쟁이다’ 아우성인데 한인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최근에 여러 명의 한인들과 저녁을 먹는 기회가 있었는데 나누는 얘기는 한결같이 ‘나’에 대한 관심사가 전부였다.
미국사회는 심각한 환경문제, 이라크와의 전쟁 등 당면한 문제들로 찬반여론이 뜨거운데 한인들은 나 이외의 문제들은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당장 코앞에 놓인 내 비즈니스, 내 가정, 내 자식에 관한 생각뿐이다. 단체만 하더라도 미국사회의 흐름과 동향에 관심을 별로 갖지 못한다. 이슈가 있으면 ‘관심 갖자’ ‘참여하자’ 할 수 있는 여력과 능력이 별로 없는 상태다.
지난 9.11 테러 1주기 기념식 때만 보더라도 미국정부가 ‘미국기를 반절로 내려달라’ ‘성조기를 차, 가슴에 달아달라’ 입이 닳도록 협조를 요청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떠했나.
여기에 따라주려는 움직임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에 사는 한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 없는가’ 같이 걱정하고 함께 염려하기보다는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한국정치 죽일×들’ ‘부시 대통령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비판만 하려든다.
무엇이든 단지 화제거리로 그칠 뿐, 조그마한 것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은 부족하다. 이런 것은 바로 작은 마음에서 싹튼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작은 노력들이 바탕을 잡으면 큰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고 사회분위기도 절로 밝아지게 된다.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고 적은 벽돌이 쌓여 큰 빌딩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 한 사람의 작은 정성과 선행은 결코 적은 것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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