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편인 우리 집엔 휴가철이 아니어도 일년 내내 방문객이 많다. 올해도 남편의 친구 한 명이 세미나 참석 차 왔다가 들렀고, 출장 왔다가 들른 친구도 두명. 교환교수로 와서 일년 예정으로 머무르고 있는 동창도 방문객중 하나이다. 사촌언니는 출장 길의 형부와 동행하여 왔었다. 나의 직장 동료였던 연 선생은 쌍둥이 딸과 함께 다녀갈 예정이라며 기별이 왔다. 갑자기 나타나 깜짝 쇼?를 연출할 이들을 포함하면 더 많은 방문객이 우리를 즐겁게 할 예정이다.
볼거리가 많은 나성은 미국 서부의 좋은 관광지이다. 인터넷에서 만난 독자의 귀띔인데, 한국에서는 제주도나 나성에 일가친척이 있으면 휴가 때 계탄 기분이라고 한단다. 전엔 손님이 오면 모두들 집에 모셔 접대를 했었는데, 요즈음엔 꾀가 생겨 밖에서 식사대접을 하고 집에서는 간단히 차를 마시며 늦도록까지 뒤풀이를 한다. 그러고 보니 좀 더 편해지고 손님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집에서 음식장만을 하게 되면 며칠 전부터 메뉴를 생각하고, 미리 장 봐오고 하느라 일주일이 심란했었다. 전날은 밤늦도록 지지고 볶고 하다가 당일엔 집 치우기며… 연출을 하다보면 뻗곤 했는데, 여간 편해진 게 아니다. 미련하게 정석? 대로 살다가 요령을 피우는 셈인데, 음식 차리는 시간을 손님과 대화하는데 쓰니 오히려 더 재미있고 의의가 있다.
세미나에 참석 차 와서 만나게 된 남편의 동창은 20년만의 해후였다며, 헤어지면서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고 조크를 했다. 내 친구도 아닌데 옆에서 듣는 내가 괜히 센티해졌다. 한치 앞도 모르는데 20년 후를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이별을 하려는데 조금 눈물이 나왔다. 평소 잘 울어서 ‘고장난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가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와 민망한 적이 많다. 남편의 친구가 가는데 웬 주책인지… 내 눈물실력을 잘 아는 식구들은 그냥 지나가지만 모르는 이들에겐 오해사기 십상이다. 그러니 우리 집엘 다녀간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본의 아닌 결례와 함께 상태가 안 좋은 이로 찍혔을 것 같기도 하다.
내 눈물을 보고 어떤 이는 감정이 풍부하다느니 심성이 곱다?느니 하지만, 사실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눈물 병은 나의 고질병이다. 어머니가 다녀가실 땐 증세가 더욱 심각해진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은 아침부터 공연히 부엌과 거실을 서성거리며 눈물을 찔끔댄다.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고, 좀 더 잘해 드릴 걸 후회도 했다가, 뛰어나가 쓸데없이 선물도 하나 더 사오고 한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여서 캑캑 헛기침을 하다가 할말 없으니 “아이한테 소리지르지 말고, 남편에게 사분사분 해라”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하신다. 공항에 따라나가 짐 부치고 좌석 받는 걸 거들면서 두 모녀가 빨개진 눈으로 훌쩍거리면, 공항 경찰이 따라다니며 “아 유 오케이?”를 연발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한국에 아버지를 뵈러 갔었다. 돌아가시기 넉 달쯤 전이었는데 미련한 딸은 몰랐고 아버지는 아셨던 것 같다. 생전의 마지막 만남인 줄… 늙으신 아버지가 내 손을 오래도록 잡더니 우시는 거였다. 아버지의 눈물… 낯설었다. 처음엔 얼굴에 잡힌 많은 주름 때문에 웃으시는 줄 알았다. 가만 보니 우시는 거였다. 그 때 아버지를 보면서 늙으면 웃는 것과 우는 표정이 같게 보이는구나 생각했었다.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이별’이란 단어만 들어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프다. 그 뒤론 누구와 만나고 헤어질 땐 마지막 만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보면 영락없이 눈물이 난다. 누구와의 이별이든 이별은 섭섭하다. 잠깐 헤어진다고 생각해도 영원히 못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만남 뒤에 올 아쉬운 이별을 생각하면…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하게 살아야겠다.
많은 손님을 만나고 또 이별하면서 인생은 지나갈 것이다.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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