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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미국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은 평화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인권과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대외정책을 수행했다.
조지아주 땅콩 농장 출신인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권정책을 강하게 비판,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카터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협상을 중재, 평화조약을 이끌어 냈고, 이 조약은 아직도 중동 평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카터의 인도주의는 퇴임 후에 더 빛이 났다. 대통령까지 지냈던 사람이 작업복을 입고 빈민들에게 집을 만들어주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여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올들어선 쿠바를 방문, 피델 카스트로 수반을 만나 반정부 인사의 석방을 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평화주의는 대통령 재임시절이나 퇴임 후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재임 시절에 그는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뺨에 키스를 하며 동서 양진영의 데탕트를 추구하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주한 미군 철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소련은 그 틈을 적극 활용해 전세계에 마르크스주의자를 수출, 앙골라, 니카라과, 아프가니스탄, 엘살바도르에 좌익 정부가 들어섰다. 중동 이란에서는 이슬람 과격세력들이 팔레비 왕조 타도를 외치고 있는데
도 카터 행정부는 우유부단하게 대응했다. 왕정을 타도한 이란의 이슬람 과격파들이 카터 행정부에 준 대답은 미국 대사관 인질극이었다.
카터는 임기말에야 힘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는 천하의 진리를 터득하게 됐다. 그는 안보담당 고문에 매파인 즈비그뉴 브르젠스키를 등용하고, 주한미군 철수 방침을 철회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그는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로널드 레이건에 패해 단임으로 물러나야 했고, 미국 대사관을 점령했던 이란 회교 과격파들은 그가 공
식 퇴임하는 날까지 444일 동안 미국인들을 풀어주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 위원회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수상자 결정 과정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카터 전대통령과 친분이 깊고, 2년전 북한을 전격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긴장완화에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바 있다.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 덕분에 최근 북한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신의주 경제특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남북 철도 연결이 진행되고, 부산 아시안 게임에 아리따운 북측 여성 응원단이 한국 남성들의 뜨거운 호기심을 유도한 일도 현정부의 평화주의가 가져온 결과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면서 평화주의에 찬물을 끼얹는 돌발 사태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진행해 왔음을 시인하고, 핵 동결을 약속한 지난 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이 얼마전에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에게 최근 몇 년 동안 핵개발 프로그램을 인정한 것은, 남북 정상이 포옹을 하며 화해를 약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량 살상용 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핵위기가 고조되던 때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직후에 체결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밝혀진 북한의 태도는 두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북한 핵 파동에 앞서 정부가 북한에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했느니,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를 했느니 하는 등 말들이 많다.
이런 논란은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고, 선거를 앞둔 치졸한 정쟁의 결과이므로 깊이 새겨둘 필요는 없을 것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포옹과 키스를 한 후에도 힘의 균형을 파괴하려는 저의가 진행되지 않도록 긴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깨는 세력보다 힘이 세야 한다는 점을 북한의 핵개발 확인을 계기로 다시 새겨둘 필요가 있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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