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초월을 느끼고 배우는데는 자연만한 것이 없다. 씨에라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보라. 한없이 이어지는 산들의 봉오리를 보고 있노라면 유구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 태평양의 바다는 어떠한가. 절망에 가까울 만큼 넓다는 것, 결코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환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은 바닷가에 나아가 미진한 것을 용서받을만 하다.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함과 옹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초월적이고 아만을 숨죽이고, 마음을 비운다는 점에서는 창조적이 되는 이 대 자연과의 교감은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일 것이다.
대 자연이 주는 장관과 장엄은 그 느낌이 깊은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치유해 주는 것으로는 너무 멀고 일회적인 것이기 쉬운 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는 소자연이 소시민에게 주는 자연 친화적인 치유력을 나는 사랑한다. 작은 자연이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과 산뜻함때문이리라. 그래서 도시인들은 공원이나 고궁이나 강변을 자주 찾지만 나는 욕심을 조금 더 내어 가까운 곳에 있는 산사를 찾아 나서기를 즐겨한다. 자연친화적이고 치유력을 한껏 가지고 있는 곳은 산사만한 곳이 또 있겠는가.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개심사는 그 중에서도 소자연이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는 것을 완벽하게 가진 곳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천년고찰은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된지 오래이고 종교적 기능이 거의 거세된 조용함과 적막함은 금상첨화라고 할 것이다.
산중에 있는 절도 그 종교적 기능이 너무 강하여 사람의 왕래가 많고 승속이 분주하고, 건물이 찬란한 그런 곳은 별로 갈만한 곳이 못된다.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도로 붙이고 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산사에 갔다가 속진을 더 묻혀 온다는게 될법한 일인가.
늦가을의 개심사는 단풍골짜기에 들어앉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단청도 퇴색되어 편안함이 더하고 인적이 없는 뜰앞의 무너진 담장 너머로 올망졸망 매달린 감나무나 은행나무의 열매는 가을꽃으로 손색이 없다. 단정하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은 뜰과 당우(堂宇)와 정원수등은 인공인 듯, 자연인듯 구분도 가지않은 편안함 그 자체이며 절 주위의 오솔길도 한동안이나마 최고의 행복감을 안겨주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몇이 안 되는 절식구와 점심을 먹고 속절없이 하산길을 챙겨야 하는 마음은 쓸쓸했다. 마음은 살아있는 것이기에 생물 그 자체다, 생물은 갇혀서 질식을 하게되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마음은 죽음에 다가가고 질식은 할 수 있으나 죽음 그 자체는 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이 가지는 애환이다. 죽을 길이 없다는 것이 마음이 가질 수 있는 질곡이다. 이러한 마음이 질식을 하여 반죽음에 이르렀을 때 달려오라고 신라의 고승들은 개심사를 지었다고 한다. 마음에 숨통을 티워 준다는 것이다. 아 거룩한 지고 신라, 고려, 조선을 지난 오늘에 이르러 개심사를 찾아 마음의 질곡을 생각하는 대열이 이어질 것을 어찌 아셨을꼬. 가을, 봄, 여름, 겨울없이 어느때나 인연이 생기면 이 개심사를 생전에 한번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여러 독자에게 바란다.
얼마뒤 공주 계룡산의 감사와 신원사를 찾았을 때는 마침 초겨울이 되었다. 한국의 십이월은 따뜻한 날을 일컬어 초겨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십이월은 늦가을과 초겨울이 공존하는 달이며 음력으로는 달이 가장 밝고 하늘이 가장 높은 시월 상달이라고 하는 절후로써 그야말로 죽여주는 때인 것이니 이때를 당하여 나그네가 되어 본 그 행복감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십이월의 한국만큼 아름다운 나라는 이 지구상에는 없다는 것 아닌가. 계룡산 甲寺의 초겨울 풍경은 말 그대로 天下의 甲이다. 甲이란 으뜸이란 뜻이다. 대부분의 키 큰 나무는 잎이 넓은 활엽수로써 일찍이 그 잎을 뜰구어 앙상한 가지사이로 보여주는 먼 산의 봉오리와 하늘의 푸른 색깔과 밤 되어 보는 달빛은 황홀 그 자체다.
일주문에서 법당까지 오리나 되는 길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고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매표소에서 냇가 쪽으로 뚫려있는 오솔길은 마치 구름 위에 붕 떠서 천상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산중에도 흥망은 있다고 하였던가. 오솔길 옆에 있는 영규대사의 토굴은 우리의 심신을 숙연케 한다.
왜란을 당하여 공주성이 함락되었을 때 농군들은 이 산사를 향해 다 올라왔다고 한다. 십리나 되는 이 오솔길은 농군들의 핏방울이 떨어져 때아닌 단풍밭과 같이 되었다고 하니 영규대사는 갑사의 부처님 전에 나아가 살생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뒤에 하산하여 왜적과 싸우다 산화했다는 기록도 있다.
영규와 처영과 사명의 영전을 모신 조사당에 들어가 향을 꼿고 상배를 드렸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곳에는 우리의 귀보다 작은 오층석탑이 있는데 소가 저 밑의 마을에서 이 골짝까지 필요한 물건을 실어 나르고 했는데 늙어서 이 도랑을 건너다 넘어져 죽었다고 한다. 소를 이곳에 장사 지내고 그 공을 기려서 오층석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백제시대의 탑이다. 천년이나 넘게 사람들의 합장을 받아온 소탑이라고 하니 공덕은 헛된 것이 아님을 다시 느끼게 한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오솔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계룡산 자락의 갑사를 내어이 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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