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명성”있는 사람을 맹목적으로 우러러보는 경향과 그 분들을 질시하는 마음이 묘하게 공존합니다. 그런데, 이 둘의 마지막은 거의 비슷합니다. 전자의 경우, 사람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실망을 낳아 신뢰했던 꿈이 깨지는 허망함을 맛보게 되고, 후자의 경우, 명성있는 사람의 먼지까지를 털어 비판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순간적으로 만족시키지만, 곧 유치함을 느끼며 공허해집니다.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두 분의 스승이 있습니다. 나는 한 때 두 분을 ‘맹목적으로’ 존경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분들을 향한 나의 존경심도 성숙되어 있습니다. 실망(?)을 통해서 배운 교훈입니다.
한 분은 목사가 되는 학위과정에 있을 때 만났습니다.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 나를 격려해 주고 내 속에서 있던 가능성을 보게 한 분이니까, 나의 영적 아버지인 셈입니다. 이 분을 무척 존경했는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연히 교수님 댁에 방문했는데, 글쎄 교수님께서 독한 양주를 마시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자란 신앙 전통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스승은 마지막 학위과정을 지도해 주셨던 학문의 아버지입니다. 엄청난 학적 깊이와 정확성 그리고 매사를 진지하게 관찰하는 모습 속에서 절제된 학자의 ‘완벽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다정하게 지내던 아내와 이혼을 하고, 지적인 매료를 따라 캠브리지 대학의 철학교수와 재혼하였습니다. 이 소식은 한동안 내 생각을 완전히 멈추게 했었습니다.
목회를 하는 중에 사람에게 실망하는 경우를 직접 간접으로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내 속에 지나친 기대를 만든 나의 어리석음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나도 못 지키는 수준의 기대를 상대에게 전가하고 기대에 어긋난 상대를 보면서 자신의 부족을 위안하려는 어리석음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에게 실망한 것은 내가 나를 하나님 앞에 점검하는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경험하게 되는 작아진 나의 모습은 옆 사람을 비판적으로 바라 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성숙해 간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실망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에 대한 기대는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합니다.
과거 두 스승에 대한 나의 경험은 내게 두 가지 교훈을 주었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실망을 주지 않는 완전한 스승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혹 사람에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나는 여전히, 어쩌면 그 점 때문에 더, 그 분들을 존경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들의 부족함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보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규 삼
(나성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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