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토 공예 심취 고영옥 주부
노년에 들어서 무엇을 하며 일상을 보낼까 고민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일과 자녀들 키우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들일수록 은퇴 후 여유롭게 즐기는 삶을 소망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 서면 불안과 초조를 느낄 뿐. 뒤늦게 무언가를 배워보려 해도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다. ‘공부 할 때 해!’라는 말이 어디 그냥 생겨났을까.
고영옥(65·주부)씨는 혼자 있어도 참 할 일이 많다. 젊은 시절 약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취미로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주변인들의 권유로 별 기대 없이 도전에 출품했는데 3년 연속 특선을 했다.
한 가지에 도통하면 나머지는 그저 이루어지는 걸까. 그녀의 공예 실력은 확실히 출중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지만 그녀는 특히 지점토로 작품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종이로 만든 지점토를 틀에 붙여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칠해 윤기를 내 만든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가 미켈란젤로라도 된 듯 가슴이 뿌듯하다.
지점토를 주물럭거리며 인형을 만들 때면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야훼의 이야기가 낡은 성경 구절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반죽을 동그랗게 빚어 얼굴을 표현하고 콩알만한 덩어리를 살짝 붙여 코를 만드니 인형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사랑스런 표정을 지닌다. 지점토는 여러 가지 디테일을 잘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체감이 뛰어나고 색감도 고와 솜씨를 한껏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공예 소재다.
지금이야 대형 작품도 척척 만들어내지만 처음에는 그녀 역시 작은 소품부터 시작했다. 여고 시절을 회상하며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를 새겨 넣은 벽걸이를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꽃다발 받았을 때의 환희를 기억하며 꽃다발을 가운데 장식한 편지꽂이도 빚었다. 쉬지 않고 오물딱조물딱 만들다보니 어느새 하얀 벽은 비어 있는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작품들로 들어찼다.
지점토로 만든 소품을 선물로 받을 때, 사람들은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지며 감동한다. 정성은 아름다운 삶의 향기. 형상화된 그녀의 마음은 때론 벽에 걸려, 때론 장식장 위에 놓여 세상을 더욱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니 아름다운 세상은 어쩜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솜씨가 좋으니 그렇겠지 싶었는데 지점토 공예라고 해서 꼭 손재주가 좋아야 하고 미적인 감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누구든 하려는 의지만 있고 꾸준히 시간을 내면 소품 정도는 너끈히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장식장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인형들은 생긴 모습과 입힌 옷이 달라도 화단에 심겨진 꽃들처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조화롭다. 차 한 잔을 앞에 하며 스스로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인하여 그녀의 특이할 것도 없는 일상은 아름답게 채색된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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