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딸이 자기가 만든 프로젝트라며 재미있는 작품을 보여줬다. 어느 날 L. A. 다운타운의 길거리로 빨래를 가지고 나갔다. 카메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잘 안보이게 설치해 놓고 마치 집안에서 하듯이 천연스럽게 펼쳐진 빨래 감을 하나씩 정돈해서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딸의 의도는 가장 개인적인 일이 가장 공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을 필름에 담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길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의식도 하지 않는 것이다. 간혹 드물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느냐?"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홈리스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파는 것이냐?"고 물었을 뿐이다. 호기심 많고 할 일은 별로 없는 청소년 둘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딸의 이상한 행동을 발견하고 추근거리다가 나중에야 카메라를 발견하고 도망을 갔다. 몇 군데 자리를 옮겨가면서 같은 작업을 반복했는데 놀라운 일은 사람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
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해져간다. 바로 이웃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나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야 무슨 관심들이 있겠는가. 이러한 무관심은 젊은 세대일수록 더하다. 편견이 아니라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요즘 젊은이들은 뉴스를 거의 읽지도 듣지도 않는다.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연예계의 스타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은 열광적으로 시청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기성세대들이 켜 놓은 화면을 건성으로 어쩌다 들여다 볼 뿐 큰 관심은 없다. 그러다 보니 왜 전쟁을 하는지, 그 배경에 대한 이해와 고민은 턱없이 부족하다. ‘단지 전쟁은 나쁘다’란 지극히 단순한 감상만이 판단의 근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전데모대의 면면을 보면 상당부분이 청년들이다. 솔직히 이것이 나를 약간은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세대 차이를 떠나서 갈등과 고민을 대중의 몫으로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고민과 갈등과 결정은 어차피 지도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설득하고 따라오게 만드는 것도 지도자의 몫이다. 지도자의 갈등을 이해도 못하고 스스로도 갈등이 없는 반대자들을 섭섭해하거나 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지도력이다. 이 면이 부시대통령이나 노무현대통령이게도 아쉬운 부분이다. 부시대통령은 너무 고집만 부리는 인상이고 노무현대통령은 너무 선비스럽다. 젊은 검사들과는 지엽적인 문제로도 진흙탕 싸움 같은 토론을 벌였으면서도 정작 국가적인 중대사에 대해서는 총대매기를 거부하는 듯한 인상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윌리 브라운 시장은 아주 실용주의자답게 반전데모 때문에 소모되는 시의 비용이 하루에 90만불에 이른다면서 재정파탄의 위기를 호소하며 데모자제를 당부했다. 어떨 때는 명분보다도 실용성이 더 호소력을 지닐 수도 있는 것 같다. 선비스러운 한국 각료들 중에는 그런 지혜로운 실용주의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어떤 명분이나 실용이든 데모나 설득이든 다 전장 밖에서의 이슈들이지 정작 전쟁터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은 사치일 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나왔다가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진 포탄의 엄청난 폭발음에 정신을 잃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눈앞에 파편에 찢긴 아이의 팔 다리가 떨어져 뒹구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부여잡고 울부짖다가 실신하는 어머니가 있는 참극의 현장에서 다른 이슈들은 더 이상 이슈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어떤 실용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빨리 끝나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빨래를 개키는 여자아이가 있을 때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고 그 아이의 몸뚱이가 찢겨 마치 흐트러진 빨래처럼 사방으로 뒹구는데도 불구하고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아가는 카메라의 눈처럼 역사의 눈이 우리 모두를 보고 있다. 우리가 어떤 행인의 모습인지가 다 담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정작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가 그 카메라의 눈에는 다 담겨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갈등과 고민이 진지하든 진지하지 않든 전쟁은 빨리 끝나야 한다. 우리가 애국자이든 애국자가 아니든 전쟁은 빨리 끝나야 한다. 시민권 선서를 할 때 미국이 나의 조국이 되었고 그래서 조국이 나를 필요로 하고 또 명령한다면 총을 들고 있기는 있겠지만 그래도 전쟁이기에 그것은 빨리 끝나야만 한다.
지난 주 우리 교회의 주보 앞면에 두 가지 사진을 합성해서 내 보냈다. 아래 부분에는 폭격이후 흑연이 치솟는 바그다드 시가지를 배경으로 한 공터에서 이라크의 어린아이들이 공차기를 하는 사진이고 그 위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이 세상을 감싸며 축복하시는 사진이다. 아무 설명이 없었지만 그 사진의 메시지는 누구나 다 이해했을 것이다. 다가오는 주일에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 사진은 그냥 두고 그 아래 이라크의 아이들을 미국병사와 영국병사의 사진으로 바꾸려고 한다. 누구에게나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매일 새벽기도 시간에는 평화를 위한 기도순서가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지금은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하루 더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전쟁을 하루 더 빨리 끝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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