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증훈 행장의 전격적인 사퇴가 발표된 다음날인 1일 윌셔가의 한미은행 본점은 종일 침울했다. 며칠 전부터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부행장급 간부도 사퇴를 공식발표 직전에야 감지할 정도로 육 행장의 사퇴는 충격적으로 전해졌다.
2번째 임기를 2년 반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이뤄진 사임 원인은 이미 알려진 대로 올들어 확연해진 실적부진에다 이로 인한 이사회로부터의 유무형적인 압력과 갈등이 직접 원인이었다.
지난해 월드컴 투자 손실에다 대형 한인 섬유업체와 의류소매체인 관련대출 등이 부실로 판명된 가운데 타은행 융자를 공략하기 위한 스카웃 상품을 내놨지만 경쟁은행들의 집안 단속으로 별 성과가 없어 한미의 올 1분기 실적은 부진했다. 특히 500만달러 안팎으로 알려진 다운타운 한 한인업체의 대출이 이자납부 조차 중단되는 부실로 밝혀지면서 책임소재 등을 두고 심적 부담이 컸다는 이야기도 있다.
육 행장은 이런 와중에서 성과급 성격의 보너스도 반납했다지만 문제는 이런 일이 과연 자산 15억달러인 한인사회 최대은행의 행장을 전격사임으로 내몰 만큼 심각한 경영상의 잘못이었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임 행장에 이어 또 다시 행장의 임기 중 중도사퇴를 몰고 온 한미은행 이사회가 비판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육 행장의 이번 사임에 대해 다른 한인은행의 한 이사장은‘형식은 자진사퇴이나 내용적으로는 해고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이사회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30일 이사회 분위기는 일부 이사들은 행장의 사임을 말리는 시늉만 하거나 방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는 타 은행에 비해 월급이나 보너스도 많지 않으면서 임기 중의 행장을 잇달아 쫓아내는 터가 센 곳이라는 비난이 만만찮다.‘더 좋은 행장을 영입하기 위해’있던 행장들을 내보냈으나 그렇게 나간 행장들은 경쟁은행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반면 막상 한미에서는 또 임기중의 행장이 중도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미는 유난히 이사회가 센 곳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사들은 그런 권한에 너무 익숙해져 본인들 스스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같은 권한행사가 결과적으로 CEO 고유의 경영권 침해에 이르러 갈등의 주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은 이사들만 다 알고, 주주 이익은 이사들만 걱정하는 것처럼 하고 있으나, 천만의 말씀”이라고 볼이 부어 있는 행원도 있다. “연말에 달력 결정하는 것도 이사회 소관”이라는 냉소적인 말이 직접 매니지먼트의 입에서 밖으로 흘러 나올 정도로 이사회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인사회 최대 은행이 질과 양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끼리끼리로만 닫힌 이사회, 너무 비대한 권한의 이사회야말로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또 다시 행장 중도사퇴가 벌어진 시점에서 되새겨 봐야 한다는 비판이 한인 은행가에 적지 않다.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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