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버지의 낡은 손목시계나 고물 라디오를 분해했다가 조립했던 기억은 호기심 많은 소년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했음직한 일이다.
다음달이면 고교를 졸업하는 이은호(18·뉴타운고12년)군은 청년을 앞둔 지금도 분해, 조립과 씨름을 하고 있다. 라디오, 시계, 게임기, 오디오를 거쳐 이제는 컴퓨터가 은호의 해부 대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립하는 게 재미있다는 것.’
일여덟 때부터 뜯었다가 조립하기를 반복해왔는데 한번은 조립한 게임기가 작동이 안돼 어린 마음에 혼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경기도 성남시에 살 때 친구형의 컴퓨터를 만져보고 신나고 재미있어 했던 은호는 뉴욕에 오던 98년 마침내 ‘마이컴’의 꿈을 이뤘다.
"여섯 살 때 처음 만져보고 7년이 넘어서야 제 컴퓨터를 갖게 됐어요. 그 기쁨은 말할 수도 없었어요. 아빠(이병하씨·세탁업), 엄마(이문희씨) 땜에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누워도 눈앞에는 컴퓨터가 어른거렸으니까요."근데 ‘컴퓨터도 뜯어보면 어떤지’ 궁금해졌다. 비싼 데다 어렵게 구한 거여서 선뜻 분해해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애꿎게 케이스만 열었다 닫기를 수 차례. 마침내 2년을 못 넘기고 컴퓨터는 은호의 손에서 하나 하나의 부품들로 해체됐다가 다시 조립돼는 농락(?)을 당했다.
물론 부모님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해부학에 능통한 외과의사가 칼을 잡으면 이런 기분일까. 드라이버로 이것은 풀어보고 저것은 조여보면서 더욱 신이 났고 어느새 또래 아이들 속에서 ‘컴박사’로 통하게 됐다. 자신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은호에게 달려왔고 부품 교체에서부터 고장 수리 등을 부탁하게 된 것. 이제는 아들의 실력을 인정한 부모님도 컴퓨터 뜯는 거는 말리지 않는다.
갈수록 컴퓨터에 흥미가 붙자 은호는 졸업반에 올라가면서 A플러스 자격증 수업을 신청했다. 한해 졸업생 750명중에서 60명 정도만이 수강하는 과목이다. 컴퓨터 수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이 강의에서 하드웨어 기초는 물론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는 6월26일 졸업하면 퀸즈칼리지에 진학해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벌써부터 프로그래밍을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다.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처럼 노력해서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자신이 읽은 책의 ‘노력하는 사람 모두가 성공하지는 않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가 노력한 사람’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은호의 왼쪽 귀에는 두 개의 귀걸이가 내내 반짝이고 있었다. SAT 시험을 치른 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귀를 뚫었는데 ‘처음엔 아이들이 모두 놀랐는데 지금은 멋있다고 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퀸즈연합장로교회에서 학생부 밴드로 베이스 연주를 맡고 있기도 하며 축구도 좋아하고 기타도 칠 줄 안다. 한국의 펑크록 밴드인 ‘크라잉넛’의 음악에 심취해 있기도 하다.
친구들로부터 얻은 별명은 ‘바람둥이’. 하지만 그냥 친구는 많아도 사귀는 여자친구는 없다고 극구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이러한 은호의 자유분방함은 끊임없이 창조가 요구되는 컴퓨터 산업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오늘도 컴퓨터를 뜯어 놓고 활짝 웃고 있는 은호가 그려나갈 한인 1.5세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글 장래준 기자·사진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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