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중 민속(民俗)을 월별로 정월 보름, 이월 한식, 삼월 삼질,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하듯이 유월은 유두(流頭)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유월은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의 생활이 가장 어려운 보릿고개(麥嶺)의 달이다. 오죽하면 ‘감나무집, 유월부터 흥정한다.’ 하듯이 열지도 않은 감을 미리 흥정하여 돈을 앞 당겨쓴다는 유월이요, 먹이를 찾아 "오뉴월 닭은 초가 지붕을 허빈다"는 유월이다.
그리고 철이 철인지라 보리 베랴, 모 심으랴, 김 메랴, 채소 밭 가꾸랴, 너무 일손이 바빠 벼적삼이 흠뻑 젖는 달이다. 게다가 음력으로는 소서(小暑) 대서(大暑) 중복(中伏)이라는 무더위로 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철이기도 하고, 때로는 유월 가뭄으로 가슴을 죄는 달이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다 겪은 시련의 유월이다.
그래서인지 그토록 시를 즐겨 쓴 시인도 유월을 소재로 한 시는 드믈다. 안 쓴 것이 아니고 차마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한 시인이 읊은 ‘유월의 시’ 중 우리 한국인을 질경이(車前草)로 비유한 구절은 흥미롭다. 인마(人馬)에 짓밟히고 수레바퀴에 짓눌려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불사초(不死草)인 까닭이다.
우리 한국인이 이 세상 어느 동토(凍土) 어느 사막에 놓여져도 살수 있는 것도 수천년 동안 유월 같은 모진 자연을 잘 극복하고 산 때문이다. 그래서 유월은 시련의 달이지만 그래서 성장하는 달이기도 하다.
이렇게 6월이 각박한 것은 우리 나라가 대륙성 기후에 민감한 미작(米作)지대인 때문이다. 이 철에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농사를 망쳐, 먹고 살수 없기에 그렇다.
그러나 영·미권의 유월은 “준 프라이드"(june pride"라 하여 행복한 달이다. 유월에 결혼하면 축복 받는다 해서 연중 결혼율이 제일 많은 달이다. 여성의 수호신인 ‘주노의 달’이기 때문이다.
일명 ‘장미의 달’이기도한 이 달은 일년중 가장 많이 읊어지는 시인의 달이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을 이 달에 거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청할 때도 아무 말 않고 “유월이니까...(because june)"하면 뜻이 통한다는 유월이다.
6월이 오면 6일이 우리의 현충일, 15일이 미국의 ‘화더스 데이’인 것뿐이다. 우리 민속(民俗)으로는 4일이 단오절(端午節)이요, 6일이 보리는 타작을 하고 모는 심게된다는 망종일(芒種日)이 있고, 유두(流頭)는 음력으로 6월 15일이다.
단오는 단옷날 낮에 약초를 캐어 말리면 약효가 좋다하여 익모초(益母草) 등을 채약하고, 창포(菖蒲) 물에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단오 쑥떡을 해 먹고 단오 부채를 만들어 선물을 하는 한편 과수도 정성껏 가꾼다.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보면 대추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배나무, 감나무 등 과목에는 암·수(雌雄)가 있어 서로 접촉을 해야 잘 자란다고 해서 나무를 시집보낸다 했다. 이를 가수(嫁樹)라 하며 암나무를 숫나무 근처로 옮겨 심었는데 5월 단옷날이 적기(適期)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와 있던 선교사 ‘게일’이 “한국사람은 나무 한 포기 가꾸는데도 시심(詩心)이 있다”고 했다.
6월 보름(음력)은 유두(流頭)라 하여 남자들은 냇물에서 천렵(川獵)을 한 다음 미역을 감고, 부녀자들은 오랜 가사노동과 규방(閨房)에서 해방되어 계곡 물에 들어가 머리를 감거나, 폭포수에 몸을 적시는 연중 단 하루의 ‘여름 바캉스’를 즐긴다.
이때 짓궂은 사내들은 ‘유두 사리’라 하여 몰래 숨어 엿보는 괴습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세시민속은 지연을 보호하고 잘 순응하며, 땀 나기 쉬운 오뉴월이지만 몸을 깨끗이 하고, 선(仙)과 속(俗)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일하고 쉬고 놀곤 했던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그라크혼은 ‘미숙한 근대화는 전통문화를 죽이지만 성숙한 근대화는 전통문화를 살린다’고 했다. 동양문화권에서 전통문화 찾기에 앞장 선 나라는 단연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 등이다. 성숙한 근대화를 위해 우리도 최소한 4대 명절(보름·단오·한가위·상달)만이라도 그 연유와 그 연유 속에 얽힌 우리 조상의 얼을 2세들과 함께 되 새겼으면 한다.
나른해지기 쉬운 유월, 우선 송림(松林)으로 가자. 가서 송풍(松風)의 목기(木氣)를 흠뻑 마시고, 땀에 젖은 몸과 마음을 유두(流頭) 하듯이 정화(淨化)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사상의학(四象醫學)에도 숲이 우거진 산 속을 거닐면 목기(木氣)의 흡입으로 여름을 잘 타는 소양인(少陽人)이나 회춘(回春)에 좋다고 했다. 과학적으로도 ‘테르펜’이란 탄화수소(炭化水素)를 수목이 발산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거진 숲을 5분만 걸어도 이미 5분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괴에테의 말도 체험할 겸 유월 한달 삼림욕(山林浴)에 흠뻑 젖어보자.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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