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훌쩍’‘콜록콜록’.
인류의 영원한 훼방꾼 감기가 집안에 침투했다. 아내와 큰아이는 자신이 감기의 노예가 됐음을 알리는 기침 소리를 잇달아 내뱉는다. 어머님도 몸이 으슬으슬 춥다며 온 가족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태산이다.
멀쩡한 막내 꼬맹이도 덩달아 ‘콜록콜록’ 억지 기침을 흉내낸다. 나 역시 감기 기운이 도는 것 같아 ‘소주에 고춧가루를 풀어먹으면 감기가 떨어진다’는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석을 떤다.
아내와 큰아이는 ‘기침감기, 코감기’를 한방에 아웃 시키려고 감기 약을 먹지만 신통한 효과가 없다. 급기야 큰아이는 감기가 너무 심해 학교를 갔다가 조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콜록콜록’ 기침이 잦은 아내는 “가게 손님들한테 ‘사스’ 오해를 받을까 겁난다”며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며 며칠째 감기 약을 달고 산다. 하지만 아무리 감기 약을 먹어도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흔히 ‘감기 약= 감기를 낫게 하는 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감기를 치료하는 약은 없다고 한다.‘감기치료제가 없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각종 감기 약은 치료용이 아니다. 기침, 고열, 통증 등을 억제시켜 몸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감기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저항력을 키워 주는 약일 뿐이다. 때문에 감기 증세가 그리 심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약 보다는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을 먹고 보통 때 보다 일찍 잠을 자고 푹 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한다.
감기의 순 우리말은 ‘고뿔’이다. ‘고뿔’은 마치 코에 뿔이 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코에 불이 난 것을 의미한다. 즉, ‘고뿔’이란 말은 ‘코’와 ‘불‘이 합쳐진 말로 감기에 들면 코에 불이 나는 것처럼 더운 김이 나온다하여 유래된 말이 아닌가 싶다.
감기는 感氣의 한자어지만 우리 나라에서 만든 한자어다. 혹자는 감기(感氣)를 일본 한자로 알고 있기도 한데, 감기에 해당하는 일본한자는 사악한 바람이란 뜻을 지닌 풍사(風邪)이다. 중국에서는 감기를 감모(感冒)로 표현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감기를 ‘고뿔’ 또는 ‘상한(傷寒)’이라 불렀다. 찬바람에 몸이 상했다는 의미다. 감기에 걸리는 것을 찬 기운이 침입해 몸의 생리상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열이 나는 것도 몸 속에 있는 찬 기운과 이를 내쫓으려는 내부에서 생긴 힘이 싸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옛날의 감기치료는 몸에서 열이 나게 하는데 집중됐다.
몸에서 땀구멍이 열려 땀이 나면 찬 기운이 땀과 함께 밖으로 나가 감기가 낫게된다는 것이다.조상들이 여겼던 최고의 감기 퇴치 방법은 황토방에 장작불을 때 땀을 쏙 빼는 것. 땀을 내고 쉬어주는 것을 최고의 치료법으로 여긴 것이다. 마치 오늘날의 사우나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여러 가지 음식을 이용, 감기를 물리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많이 타서 먹는 것. 땀을 내 찬 기운을 내보내는 이치로, 고춧가루의 ‘발한’ 작용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콩나물+고춧가루=감기 안녕!
이외에도 음식을 이용한 퇴치 방법으로는 귤껍질을 끓여서 그 물을 먹는 것, 대나무 잎을 다려 먹는 것, 모과에 엿과 생강을 넣어 먹는 것, 그리고 도라지를 찧어서 꿀에 재워놓고 장기간 복용하는 것 등 다양했다고 한다.
감기는 만병의 근원으로 불리지만 그렇게 대단한 병은 아니다. 감기 자체는 자연 치유가 가능한, 결코 무서운 병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는 것 또한 감기다.
요즘, 여기 저기서 감기에 시달리는 한인들이 많이 있다.
감기는 걸린 사람도 괴롭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들기 마련이다. 때문에 현재 감기에 시달리는 한인들이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듬뿍 타서 먹고는 땀을 쏙 빼는 방법으로 감기를 물리치고 건강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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