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은희(65. 미국명 그레이스 유. 브루클린 캐롤가든 거주)씨는 여성으로서 일찍이 미국에 유학온 후 주류사회에 파고들어 일과 함께 봉사활동도 오랜 기간 해왔다. 또한 한인 여성들의 권익신장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성을 띄어왔다.
그러나 ‘그레이스 유’ 하면 무엇보다 2세들에게 정치적 발판을 마련해주고 주류사회 각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교량역할을 소리 없이 해온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유씨를 2세들의 대모라고도 부른다. 그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특별히 젊은이들을 돌보고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이 잘돼야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향상되고 힘이 강해진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유씨는 시간만 나면 언제나 2세들과 접촉하며 그들의 얘기를 들어준다. 미국생활은 물론, 인생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나 조언도 해주고 있다. 덕분에 지금까지 유씨로부터 도움을 받아 주류사회나 미국 직장에 진출, 인정받고 있는 한인 2세들의 수가 소리없이 늘고 있다. 때문에 2세들 사이에서도 유씨는 이미 대모로 인정을 받아 뉴욕에 온 젊은이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유씨를 찾는다고 한다.
그때마다 유씨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자세히 듣고 방법을 알려주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들이 좋은 잡을 얻게 되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바램이 있다면 일년에 몇 명씩 2세들을 미국사회에 들여보내는 일입니다." 유씨는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야 한다면서 이것이 바로 자신이 커뮤니티에서 받은 것을 환원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세들을 미국직장에 들여놓고 나면 그들이 너무나 일을 잘해 한인으로서 더욱 큰 긍지를 느끼죠." 유씨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누구든 필요로 하면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젊은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문제점과 고민을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 이따금 그들을 집에도 초대하고 그러기를 지금까지 20여년을 계속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나름대로 신뢰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아무런 효과 없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이번 인터뷰에도 "내가 무얼 했다고? 공연히 말로만 떠드는 건 딱 질색"이라며 한사코 사양했다. 조용히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2세들과 호흡하며 가까이 하다 보니 모두들 잘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서 "그러나 부모들이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특히 부모세대가 자녀들의 희망이나 성격, 적성도 마다한 채 무조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밀어붙이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답답하다며 자녀들에게 숨 쉴 공간을 주어야지 한국식으로 덮어놓고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씨가 만나는 2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불평은 ‘나는 못했으니 너라도 해야지’ 하는 보상심리가 근저가 된 부모들의 교육방식이라고 한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길이 있는데 무조건 ‘의사나 변호사, 아니면 회계사가 돼라’고 부모들이 강요하는데 이는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의 뜻대로 변호사가 되면 잘하긴 하는데 정말로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다른데 있는 것을 많이 본다고 말한다.
2세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작고한 부군 윌리엄 A 보카우즌씨가 오히려 더 지대했다고 한다. 보카우즌씨는 유씨와 68년 결혼해 살면서 뉴욕주 은행국 부국장에 이어 다임세이빙스 은행의 부행장으로 일했던 변호사이자 은행가로 9.11 테러 사건 전날 지병으로 작고했다. 그는 생전 한인 젊은이들을 너무나 좋아해 평소에도 집에 자주 초청했다. 좋은 얘기를 많이 들려주며 충고와 격려,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태동한 단체가 바로 한미시민활동연합 KALCA(Korean American League for Civic Action)이다.
이 단체는 매년 4명씩 유능한 젊은이들을 선정, 그들이 원하는 곳에 인턴 쉽을 보내 연구활동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학생들이 여름에 6주간 자신들이 원하는 분야에 들어가 연구하는 비용을 1인당 2,400달러씩 지급한다. 이제는 프로그램에 신청자 선정과정이 꽤 오래 걸릴 정도로 신청자수도 점점 늘고 있다. 유씨는 아직까지도 2세들을 매년 3-4차례 집에 불러 바베큐는 물론, 조찬도 같이 하며 대화와 친교시간을 갖는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2세들은 언제나 2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유씨는 한국에서 60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바로 미국에 유학와 뉴욕 유니버시티 NYU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던 초창기 유학생. 공부를 마치고 미국사회에 뛰어들어 이것 저것 하다보니 어느덧 미국생활은 반세기 가까운 43년이나 되었다. 뉴욕에서 공부를 끝낸 후 브루클린 소재 뉴욕 시립대 킹스보로 칼리지에서 미국정치를 2년간 강의하고 미국에 입국하는 회사직원들과 부인들의 미국적응을 교육시키는 강좌를 뉴 스쿨 퍼 소셜 리서치(현 뉴 스쿨 유니버시티)에서 8년동안 하였다.
또한 내셔널 YWCA에서 컨설턴트 1년, 뉴욕시 교통공사에서 지역사회개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강사로 있으면서 카치 시장 때 소수민족 자문위원, 여성지위 향상국 커미셔너를 지냈다. 민주당 브루클린 지역에서 줄곧 자원봉사하면서 쿠오모 주지사의 아시안 아메리칸 자문위원회 의장을 12년간 하면서 주지사 사무실에 아시안 아메리칸 사무실을 열어 정치 활동을 벌였다.
그의 활동상을 보면 아마도 뉴욕의 한인 1세 여성 가운데미국정치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관련 봉사 활동도 많이 한 사람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듯
싶다. 그만큼 유씨는 미국정치 활동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쿠오모 주지사가 이임할 때까지 뉴욕주 주택융자금 기관인 소니마(SONYMA)에서 디렉터로도 근무했다. 이렇게 주류사회에 이모저모로 파고들면서 그는 한인정치력 신장에 보이지 않는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유씨는 지난 2000년 미 대통령 선거 때 출마한 빌 브레들리의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은퇴했다가 2002년 10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으로부터 시인권옹호국의 커미셔녀로 임명돼 다시 활동 중이다. 더불어 존 리우 시의원의 고문으로도 뒤에서 적극 도와주고 있다. 그는 아직도 예나 다름없이 정치력신장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나와 열심히 일한다. "1세들이 많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도 너무 우리들끼리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유씨는 많은 한인들이 미국에 살면서도 여전히 모든 걸 한국식으로 하고 있는 걸 본다며 "시간만 오래 지났다고 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실은 미국의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면서 "때로는 한인들이 하는 걸 보다 못해 뭔가 조언하면 대부분이 불쾌하게 생각, 그때부터는 안타깝지만 그냥 그대로 묵과하고 지나간다"고 털어놓는다.
또한 서로가 모르는 건 배워가면서 자꾸 이 사회에 맞게 적응해가야 하는데 모두들 자존심만 내세워 상대방의 조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지난 뉴욕주 주택개발국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도 공공단체들이 필요하면 건축기금을 주에서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한인회에 수차 서류를 해오도록 건의했는데 반응이 없어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주위에서 좋은 걸 알려줘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도 못하고, 몰라서도 못하고 이래저래 피해를 보는 건 한인 커뮤니티 뿐이라고 꼬집는다.
이처럼 사회활동과 정치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머니 김자선 여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김자선 여사는 1930년도 이화전문 출신으로 한국에서 대한부인회 이사, YWCA 이사 등으로 30년간 여성계 권익신장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다 미국에 온 이후로도 뉴욕한인회 상록회 등지에서 20여 년간 줄곧 봉사활동을 해오다 작고했다. 유은희씨는 이런 활동으로 지금까지 미국에서 받은 상도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상이 뉴욕한인 YWCA 이사로 재직하면서 금년도 받은 20년 근속상이다.
슬하에는 현재 두 부부가 함께 연방검사인 딸 쉐런(33)씨와 무대연출가로 활동하는 아들 알렉스(31)씨가 있다. 이들은 모두 스타이브센트 출신으로 한때 이들이 재학 중 유씨는 학교의 학부모회 회장으로 3년간 일한 적도 있다. 유씨가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오가는 발자국 속에 한인 2세들의 정치력이 신장되고, 젊은이들의 주류사회 진출이 점점 더 활발해질 날도 멀지 않았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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