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틀란타 이민30년 그 삶의 현장
▶ 박선근 좋은 이웃되기 운동 회장
“우리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 국기를 내걸고 이웃과 교제해야 한다. 이렇게 흉내라도 내야 우리가 최소한 이웃으로부터 미국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좋은 이웃되기 운동(GNC)을 통해 7년째 한인들의 주인의식을 설파하는 박선근(서니 박·61)회장. 전국을 누비며 실천 가능한 작은 생활운동을 펴는 그는 “몸은 미국에 있고 세금까지 내면서 가슴은 한국에 있어 방향을 잃고 있다”며 한인들의 의식전환을 강조한다.
박선근 회장. 사무실은 아틀란타 프레지덴셜 오피스 파크에 있다. 6개의 건물이 들어선 곳에 그가 세운‘GBM’이 있고 GNC가 있다. 그의 직함도 다양하다. 청소용역업체 GBM 회장. 반도체공장 서비스업체 헤파텍, 부동산 투자개발사 글로벌 선의 CEO. 좋은 이웃되기 운동의 주창자. 백악관 국정자문위원. 그런 그는 워싱턴DC로, 하와이로 끊임없이 누비고 다닌다.
그는 지난 67년 유학생(인디애나대학 경제학과)으로 첫발을 디뎠다. 시민권자인 그는 25년전인 지난 78년 시카고에서 아틀란타로 이주했다. 이 지역 초기 한인 이민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당시 연봉은 1만7천달러. 하지만 17만달러를 버는 부자처럼 살았다. 남을 도울 형편이 아니었지만 81년 한인회장을 맡아 초기 이민자들을 도왔다. 물론 일자리를 구해주는 일이다.
“남을 돕다 보니 더 좋은 일이 생겼다. 당시 자동차 딜러에서 일했는데 신입인데도 차가 잘 팔려 돈을 꽤 벌었다. 서비스가 비결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서니(Sunny)가 됐다. 원래 선박(Sun Park)이었으나 항상 웃고 잠도 없이 일을 하니 딜러에서‘수퍼 서니’라고 불렀다. 그래서 시민권을 받을 때 이름을 아예 ‘서니’로 바꿨다. ”
그의 눈에는 한인사회가 초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초창기 끼리끼리 모여사는 형태가 지금도 똑같다. 얼마전 올드타이머 20여명이 모였는데 과거 한국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20∼30년전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내일과 내년을 이야기 하지 않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인들은 옛날 이야기만 한다.”
지난 81년 그는 아틀란타 한인회장이 됐다. 당시 교회가 3곳 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돈이 없거나 갈 때 없으면 한인회로 전화했다. 밤중에 전화가 오면 공항에 나가 픽업해 잠재워주고 직업도 알선하기 일쑤였다. 사실 GMB도 이 때문에 탄생했다.
“당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텍사스 등에서 많이 왔는데 모두 나를 찾아와 잡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청소회사에 이들을 알선해줬다. 그러나 이들은 직장을 도로 나왔다. 파트 타임이었기 때문에 일거리를 많이 주지 않은 것이다. 하루 3∼4시간 일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청소회사를 차려 이들을 풀타임으로 고용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수입도 많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3명이면 충분한데도 8명을 고용했다. 첫 계약으로 건물 6개를 맡았다. 이후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주류사회에 났고 회사가 쑥쑥 성장했다. 그리고 9년만에 첫 계약을 했던 건물 6개를 모두 사들였다. 지금까지 세일즈맨을 써본 일이 없다. 청소용역을 따내는 것도 모두 고객의 추천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돈벌이에 대한 지론도 특이하다. “39세 전까지는 무척 돈을 생각했다. 돈을 버는데 집착했다. 그런 노력에도 돈이 벌리지 않았다면 문제다. 그래서 패턴을 바꿨다. 돈에 집착하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하자고. 그랬더니 돈이 벌리기 시작했다. 82년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얼굴이 너무 탐욕스러웠다. 게기름이 흐르는 이런 얼굴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청소용역 GBM 창사 20주년… 연매출 4천만불 우뚝
미 국기 내걸고 이웃교제 등 7년째 전국순회 활동
전국 31개 흑인학교 강연… JAMA 강사로도 앞장서
올해는 GBM 창사 20주년의 해. 직원이 8명에서 출발해 정규사원 800명을 포함, 2천400명. 설립 첫해 연매출이 4만달러에서 지금은 4천만달러로 불어났다. 콜로라도 스프링와 휴스턴 등 중부와 북동부 15개 도시에 지점망을 갖추고 있고 서부지역으로도 계속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GBM은 전국 개인청소회사 탑5에 들었을 만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회사를 키웠을까. 그의 대답은 명쾌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나는 다른 사람 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근면성일 것이다. 경주마는 집중을 위해 양쪽에 눈마개를 단다. 앞만 보고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마치 경주마와 같았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에만 몰두한다. 또 잠을 안자고 일처리를 한다. 긍정적이고 머리 대신 가슴을 가지고 일을 한다. 손님을 대할 때도 반드시 손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게 한인들은 부족한 것 같다.”
주력회사인 GBM은 청소와 일반 관리를 주업무로 한다. 엘리베이터, 건물 관리, 에어콘, 방역 등이다. 월드 디지니 올드, AT&T, 벨사우스, 택사스 인스투루먼트, 마이크로, 휴렛 패커드 등 굵직굵직한 빌딩을 맡고 있다. 그런 그도 경쟁사의 질투로 곤욕을 치렀다.
“세무감사를 나왔는데 2년치를 13개월간 뒤졌다. 서류정리를 잘못했더라면 벌금 내고 빚더미에 올라앉을 뻔했다. 그런데 서류 정리를 잘해놓고 내야할 세금을 내니까 문제가 없었다. 미국식으로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다시 말해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보자. 좋은 이웃되기 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
“한인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볼 때는 미국사람이고, 미국
에서 볼 때는 한국사람이다. 우리는 갈곳이 없다. 큰 문제다. 의식구조가 완전히 한국사람이다. 미국에 살면서 동네 국회의원 이름도 모르고 세금 올리는 일 보다 한국 대통령 한마디 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미국 국기 내걸고, 이웃과 교제하기로.”
그는 다가오는 한인사회 100년에 대한 비전도 내놓았다.
“아틀란타는 잠재력이 많은 도시다.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미국적이다. 인구가 적어 단결할 수 있다. 롤모델이 될 수 있다. 투표율을 높이고 국기 내걸고 이웃과 사귀기 시작하면 파워가 어머어마하게 커진다. 이렇게 될 때 한인사회가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반도에 문제가 터졌을 때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소수계로 빨리 성장해야 한다. 한반도에 문제가 많지만 백악관 정책입안자들에게 강력하게 의견 하나 전달하지 못한다. 지난 76년 6일 전쟁을 치르는데 재미 유대인들이 강력했기 때문에 미국에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냈고 결국 나라를 구한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들로부터 돈버는 것만 배우지 말고 그 사람들의 ‘파워 공식’을 배워야 한다. 대학 역사학 교수가 거의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미국의 중심에서 국가를 이끌어간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을 한다면 미국사람들이 그냥 가만히 놔두겠는가. 미국의 중심에 서서 미국을 위해 강력하게 활동하니까 국민들이 유대인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 조 리버맨이 부통령과 대통령 후보로 나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만일 리버맨이 이스라엘을 돕겠다고 했으면 표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
백악관 국정자문위원으로도 활동중인 그는 한달 한번 정도 하와이·사모아·괌 등을 찾아가 지역 문제점을 청취하고 백악관에 보고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건강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단’을 배우기 시작했다. 1주일에 두 차례 도장에 들른다. 집에선 매일 10분간 명상하고 단전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의 유일한 휴식이다.
지난해 조지아텍에 한국학과를 설립하는데 기금 50%를 지원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청소년 기독교 부흥운동인 JAMA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전국대학을 돌며 강의한다. 모리스 브라운·클락 아틀란타 등 흑인학교에서 강연한다. 3년전 하인스빌에서 시작한 것인데 전국에 31개교에 이른다. 그는 3천여개 한인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 매너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도 모자랄 만큼 바쁘게 살아간다. 이쯤 되면 “일하는 게 곧 쉬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박선근 회장 약력
▲인디애나 대학(1967)·인디애나폴리스 수학 ▲켈록대학원 수학
▲아틀란타 한인회 회장(1981)
▲아틀란타 한국학교 설립 지원(1981)
▲베를린 해외한민족 대표자 회의 의장(1991)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1990∼1991) ▲좋은이웃되기운동 설립·사무국장(1996) ▲배리 칼리지·아틀란타 칼리지 오브 아트 이사 ▲백악관 아태계 국정자문위원.
/김상국 기자 koreatime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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