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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공항에 내려 고속도로를 달리면 “현대자동차를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한글 간판을 만난다. 공장건설 현장 입구에 들어서면 길 이름이 ‘현대 대로(Hyundai Blvd)’다.
미국 남부주 앨라배마는 주력산업인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면서 실업률이 높아졌고,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는 공장을 유치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 기업이 대형 자동차 공장을 짖기로 하자, 주와 시 정부가 하나가 돼서 도와줄 것을 찾고 있다. 현대 공장에 2,000명, 부품회사 직원 4,000명을 합치면 6,000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일이다.
앨라배마주는 여의도의 두배에 해당하는 210만평의 땅을 현대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이를 위해 주 헌법까지 개정했다. 공장짓고 남은 땅을 현대가 팔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혜택을 준 것이다. 몽고메리 시장은 아예 현대 그랜저를 사서 몰고 다니며 호의를 베풀고 있다.
현대는 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인데, 앨라배마주가 베푼 혜택은 무려 2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장을 연결하는 진입로와 철도도 건설해주고, 멕시코만의 모빌항을 확대, 자동차전용선이 접안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관세와 판매세를 깎아주고, 공장 건설후 필요한 인력 양성까지 주정부에서 맡고 있다. 몽고메리시는 시 직원 두명을 현대에 파견했고, 그들은 현대 가족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며 편의를 보아주고 있다.
현대가 이 한적한 농촌마을에 공장을 세우기로 한 것은 현지 정부의 막대한 특혜 때문만은 아니다. 켄터키주와 미시시피주가 경합한 가운데 앨라배마를 최종 선택한 배경에는 노조가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강성노조의 파업에 시달려온 현대의 입장에선 노조를 신경쓰지 않고 기업할 수 있는 좋은 곳을 발견한 것이다.
앨라배마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고향이자, 남북전쟁과 1950년대 민권운동의 진앙지로 유명하지만, 노조 조직률이 극히 낮다. 노조를 하다 국제경쟁력을 잃고 섬유회사들이 망한 것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6월들어 노동운동이 격화되고 있다. 언젠가 봄에 전국적인 파업이 일어나 춘투(春鬪)라고 하더니, 이젠 여름에 몰려 하투(夏鬪)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한국 정부가 조흥은행 노조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면서 파업을 타결한데 대해 국제금융시장의 시선은 따갑다. 조흥은행이 신한은행에 매각되더라도 노조원들은 3년동안 잘릴 위험이 없게 됐다. 게다가 몇 년내에 조흥은행 직원 봉급이 신한은행 봉급과 같아진다. 정부가 나서서 노조와 협상하고, 그런 조건의 부실 은행을 사라고 강요한 것이다.
당선자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은 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사간 힘의 균형을 노조쪽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금 그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일부 학자들은 노조를 등에 업고 대중주의(포퓰리즘)를 시행하다 경제를 망친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가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뉴욕에서 여러 차례 열린 한국 경제설명회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의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파업이 반드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사용자가 파업에 굴복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지지를 받지만, 역으로 노조에 휘둘릴 경우 시장은 등을 돌린다. 지금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해외투자자들이 노무현 정부의 노동 정책을 불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 5단체 회장단이 모여 "노동계의 파업과 집단행동이 계속될 땐 투자를 축소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엔 노동운동의 적이 사용자였지만, 지금은 글로벌리즘이다. 경제에 국경이 없어졌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선 임금이 싸고 노조가 없는 나라로 공장을 옮기면 그만이다.
군사력, 경제력으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한국은 들어올 외국기업은 커녕, 국내기업마저 쫓아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된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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