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ary (바운드리)!’
우리에겐 그리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우리말로는 울타리, 경계선, 분할선 등으로 한국말 사전에 나오지만 딱 맞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무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바운드리 이슈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낸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한번씩은 꼭 감탄하며 이런 말을 한다.
“미국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 친절해요!!” 좁은 땅에서 서로 부대끼며 신경질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당연한 반응이리라. 하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친절한 웃음 뒤에는 넘지 못할 바운드리가 있음을 우리는 금방 깨달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선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반면, 익숙하지 않은 이 단어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색다르다. 관계 속에 수없이 많은 문제를 안겨다 주기도하고, 때론 말할 수 없는 끈끈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악세사리 가게를 내셨다. 일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이유로 몇 번 바뀌었고 결국에는 병이 나셨다.
무언가 구체적인 도움을 드려야 될 것 같아 생각나는 한 학생에게 연락을 해봤다. 다행이 이런저런 여건이 서로 맞아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인 몫까지 해내는 그 학생에게 주인아주머니는 너무나 기뻐하며 종업원이 아니라 동생처럼 생각한다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언니’ ‘동생’하며 장사를 하는 그들은 정말 친자매 같았고, 후엔 그 학생이 어카운트까지 다 맡아보고 있었다. 너무 기쁜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론 찜찜함이 있었고, 단지 서로가 더 이상 ‘큰 기대’를 하지 말기를 바랬다.
혼자의 노파심이길 바랬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쪽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주인은 주인대로, 일하는 학생은 학생대로 쌓인 것이 있었고, 그것을 나누기엔 아주 애매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친자매같이 지내던 그들 사이에도 ‘월급’에 대한 의견대립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기엔 민망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고용주와 종업원간에 있어야할 ‘바운드리’가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짧은 시간 안에 피가 섞인 것도 아닌 남과 친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문화 속에선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정’이라는 접착제가 나와 너를 연결해 ‘우리’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정’이라는 것이 때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계를 일시에 무너뜨리곤 한다는 데에 아쉬움이 있다.
5월 14일 신문에 정찬희 교수님이 쓰신 ‘우리와 남’에 대한 칼럼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관계문화’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회가 아닌, 우리냐 남이냐로 구분되는 사회에선 남들에게 적용되는 골치 아픈 규정, 법, 규율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서로 알아서 도와주고 알아서 기면 되는 것이다.”
우린 아무래도 ‘바운드리’보단 ‘정’에 목숨을 거는 것 같다. “우리”이기만 하면 “너 죽으면 나도 죽는다.” 하지만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태생이 죄인인 우리는 ‘우리’를 곧 ‘남’으로 바꾸는데 많은 시간과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4.19 폭동이 있은 후 그 많은 사람이 보여 함께 행진을 했건만, 모인 성금으로 금방 싸움이 났고, 함께 친 가족같이 일하던 종업원이 앞집에 가게를 내는가 하면, 열심히 아부하며 일하던 부목사가 옆에 개척교회를 내는 현상들을 더 이상 나열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이제는 좀 인정했으면 쉽다. 우리가 결코 함께 죽어갈 수 있는 ‘우리’가 아니란 걸. 그냥 그야말로 ‘Cool’하게 서로의 바운드리를 지키면서,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필요한 ‘기대’만 서로에게 요구하는 오래, 깊게 지속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관계가 많이 생기길 소망한다.
과도의 충성도, 과도의 인정도 아닌, 서로의 관계에 맞는 만큼의 요구와 그에 맡는 페이 백이 주어지는 건강한 관계들이……
이성희
<소셜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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