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착하기까지의 발길이다’란 말이 있다. 모든 지혜나 창조적인 각(覺·깨달음)은 홀로 있을 때나 홀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점화(點火)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이는 비행기 여행이 아니고 배낭 여행이며, 나 홀로 여행인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어느 손자가 유럽 여행 중에 돈이 떨어져 할머니에게 돈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여왕은 ‘걸어서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손자는 수 천리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삿갓(金笠, 金炳淵)의 그 많은 기발한 시구(詩句)도 주막거리나 정자나무 그늘 같은 길가에서 얻은 것이지, 간 곳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정처 없는 발길이지만 그의 여심(旅心)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민하고 방황한다’고 했다.
때는 초복과 중복이 낀 7월,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낮선 곳에서의 경험’을 위해 여름 휴가길이 바빠졌다. 다음은 멤피스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을 상대로 ‘주말 여가 이용도’와 ‘소풍·여행 빈도’ 설문조사에 의한 내역의 일부이다.
주말(週末)에는 어쩌다가 골프도 치지만 주로 잔디와 정원을 가꾸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녹색주말(綠色週末) 가정이 10가정 중 3가정, 소풍(逍風)은 가족 단위의 소풍인 경우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10가정 중 2가정, 여행(旅行)은 1년에 한번이 10가정 중 3가정 내외, 2번이 2가정 내외로 조사되었다.
참고로 모국 방문은 경조사(慶弔事)를 계기로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10가정 중 8가정이 2-3년만에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류 가정의 주말 보내기는 짧게는 공원과 쇼핑 몰, 길게는 2박 3일의 가족 여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주말을 허송하지 않는다. 주말을 주말답게 보내는 것이 그들의 체질이고 습관이다. 주말에 시내 거리가 조용하고 골목길에 주차된 차가 별로 없는 것도 그 까닭이다.
소풍이나 여행 빈도가 미국인에 비해 이렇게 낮은 이유에 대해 ‘나그네가 어찌 토박이와 같겠느냐’, ‘지금 정착중(定着中)이라 바쁩니다’라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여가나 여행에 대한 우리의 의식구조(意識構造)가 미국인과 다르다는 점에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주말소풍을 단순하게 ‘휴식’ ‘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행사’ ‘일’로 생각하고 있는 듯이 모인다.
여행가들의 말에 의하면 멀리 간다고 여행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날을 보내야 여행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외진 곳이나 낯선 곳에 가서 한 3일 정도 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여행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직장인의 주말을 금요일 퇴근 이후로 잡을 경우, 만 이틀과 하루의 4분의 1, 통산해서 1주일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주말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그들은 주말을 황금주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황금주말과 여가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 그리고 채워진 것은 실(實)한 것인가 허(虛)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첫째로 여가의 선용은 “삶의 질"을 높여 준다는 인식이 몸에 배야 한다. - 미국에도 귀족(貴族)이 있다는 말이 근자에 나 돌고 있다. 옛날 우리 나라의 양반(兩班)과 같은 혈통상의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삶의 질이 남과 다른 계층"을 뜻하는 말이다.
그들이 즐기는 귀족적 삶이란 첫째, 공원·산악·해변·명승지 등 자연공간(自然空間)을 즐긴다. 둘째, 도서관·박물관·경기장 등 문화공관(文化空間)을 즐긴다. 셋째, 가족과 함께 주말 보내기 및 여행을 습관화한다. 넷째, 지역사회와 소속단체에 적극 참여하고 봉사한다. 다섯째, 국가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굳이 미국의 귀족이 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 그리고 봉사하고 사는 이 ‘선비의 삶’이 부럽기만 한 것이다.
둘째로 여가 중에는 “마음을 비운다"는 결심이 필수적이다. - 홀가분하게 마음을 비워야 새 것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고 하지만 미국인은 물리적으로 소모된 전지를 다시 충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골프이건 피크닉이건 자연과 더불어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이 있는 현장에서 또는 우리의 시야(視野)에 들어온 그들의 유연한 태도나 간편한 차림새로 미루어 짐작이 가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가로 향하는 준비부터가 가볍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준비하다 보니 자연 속에서 자연을 잃은 채 분주하게 한나절을 보내고 석양을 등지고 귀가한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다음 날 몸도 개운치 않다.
골프의 경우도 그렇다. 골프를 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신하고 환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주중에 싸이고 싸인 여러 잠재의식과 경쟁의식을 주말 잔디까지 가지고 간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부담이 될 뿐이다.
셋째로 여행은 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 위함이다. - 추억은 여행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추억은 더 뜻이 깊고 아름답다. 카라일은「여행에서 얻은 추억이야말로 내 보물 상자」라고 했다.
주위로부터 소외당하고 의지할 곳 없는 노년에 이르러 달이 밝거나 눈 내리는 밤에 되새겨 볼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는 것을 상상해 보자.
“늙어서 다리가 휘청대는 것은 기력이 쇠약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이 없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끝으로 산악인들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하늘 밑에서 살면서 하늘과 하늘색을 잊어버렸다. 평지에서는 하늘이 멀다. 삶의 울기(鬱氣)를 뚫고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자. 어찌 그것뿐이랴. 잊어버린 하늘색을 산정에서 찾고 또 사람의 원형(原型)을 찾는 길도 될 것이다.』
/ikhchang@aol.com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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