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둔치의 풀잎이라든지, 서울대학 C교수의 다감한 글을 모국신문에서 보는 날이면 나는 오래 전 K읍을 떠올린다.
그곳으로 피난 가서 어머니는 서울 S고녀 선배인 C교수 어머니를 만났다. 두 분은 전쟁으로 남편 잃은 상처 때문인지 자매처럼 지내셨다.
C교수 어머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형들이 쓰던 방이 비어 있으니 우리집에 와서 공부하렴" 그러셨다. 말씀을 건성 듣고 지나다가 이학년이 된 오월 어느 날 냇가 옆 그 댁 앞에 멈추었다. 그 때만 해도 맑은 물이 시내 중심부를 흐르고 아이들이 송사리 잡느라 떠드는 소리 여인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가 사람 사는 세상처럼 정겨웠다.
높다란 대문을 두드리자 누군가 나오는 기척이다. 육중한 문이 열리자 단발머리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재상이 오빠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대문을 활짝 열었다. 보조개 진 하얀 얼굴, 반듯한 이목구비, 돌아서서 걷는 날씬한 종아리, 기분 나쁘게(?) 키는 나를 육박하고 있었다. K읍은 예쁜 여학생들이 지천인데 그녀를 본 기억이 없다. 학교와 집만 오간다는 그녀는 여고 일 학년이었다. 마루 끝에 앉은 그녀 등뒤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잘 됐어요. 집에 여자들만 있어서 오빠가 저 방을 쓰면 든든하겠네." 꽃들의 음성처럼 들렸다. 매일 방과후 들리라고 했지만 나는 체면을 차린답시고 일주일에 한번 갔다. 그 일주일이 사실은 한달 보다 길었다.
변성기를 지낸 우리들 청소년들의 합창 "내 마음은 호수여", 토스카 중에 "별은 빛나건만"을 부를 때면 교정 끝 포플러 나뭇잎 사이로 그리움이 머물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나는 공부 걱정이 되어 3학년 여름방학에는 계룡산 신원사에 들어가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었지만 울창한 숲 사이로 하늘만 바라보더니 결국 대학시험은 낙방이었다. 낙방이란 놈은 그때까지 기고만장하던 내 인생에 열등의식 대못을 박아주었다. 서울에서 K 읍에 내려가도 냇물 아주머니 댁은 찾아가지 않았다.
대학교 때 친구와 자취를 했다. 하루는 밤늦게 도서실에서 돌아오니 돼지우리인 방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밥상까지 차려져 있었다. 그 옆에 마가린과 "오빠 건강에 유의해요." 그녀가 써놓고 간 편지. 마가린은 그 시절 최상의 식품이라 낯선 듯 S여대 장학생 인 그녀가 멀리 느껴졌다.
우리 둘째 아들도 친구 여동생을 좋아 한 적이 있었다. 하여튼 친구 핑계 대고 고등학교 때부터 그 집을 열심히 드나들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날 식당에서 예쁘고 하늘하늘한 백인 여학생이 "잘먹었어요" 그러면서 나를 포옹해 주었다. 알고 보니 아들이 좋아하는 친구 동생이었다. 나는 욕심이 나서 "임마 좋아한다고 말해" 그랬더니 "그러다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덩치는 그럴 듯 한 놈이 정말 숙맥이었다.
어머님이 서울로 직장을 옮기시자 먼저 이사오신 냇물아주머니가 외롭다며 당신 집으로 이사오라고 권하셨다. 3년 만에 그녀를 만났다.
같은 처마 밑에 살아도 나는 학군단 훈련, 산업은행 조사원으로, 그녀는 S여대 총회장이라, 꼴을 볼 수 없는 처지였고 무엇보다도 세월은 그녀를 그냥 친척 누이처럼 느끼게 했다.
엊그제 둘째 아들의 결혼식에서도 친구의 그 여동생은 내게 꽃을 달아주고 손님들을 안내했다. 아들에게 물었다. " 어떻게 생각하니?" "지금은 친동생 같아요"
인간관계란 욕심(?)만 버리면 얼마든지 편안해진다는 말은 정말 진리처럼 생각된다.
한번은 합창단 선배와 그녀 학교 앞 아이스크림 집에 들렸는데 선배가 그랬다. "이 학교 학생회장이 내 친구랑 연애한다." 그 때 예감처럼 그녀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이제는 옛날처럼 혼자이던 그녀가 아니었다. 나를 발견하곤 "오빠! 남의 동네 올 때는 신고하고 와야 하는 거 아냐 ?"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간 뒤에 "형, 제가 회장이야 " "그래-에?" 다음날 합창연습시간에 그녀와 사귄다는 선배의 친구가 찾아 왔다. 선한 얼굴 그녀에 어울리는 큰 키였다.
그와 그날밤 술을 엄청 마셨다. 다른 대학 학생회장인 그는 학생회장단 모임에서 만나 몇 번 데이트를 했는데 왠지 그녀가 멀리 하더라는 것이다. 다음날 집 앞에서 만난 그녀에게 그 친구와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누구처럼 마음은 따뜻한데 그 남자도 박력이 없어"
제대 후 그녀를 본 기억이 희미하다. 그 친구는 인간 냄새 풀풀 나는 지금도 내 친구다.
가끔 마가린을 보면 대문을 활짝 열던 그녀 생각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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