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발생한 미 동부 및 캐나다 지역 정전 사태는 찬란하게 빛나던 대문명을 일시에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1879년 백열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톡톡히 실감하며 하룻밤을 원시생활로 돌아갔다.
저녁시간이면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왕왕 떠들어대던 TV 소리도, 간간이 울리던 전화벨 소리도 깊게 잠수해버리고 주위가 고요한 침묵 속에 잠겨있었다. 온 동네의 불이 꺼지니 그날 처음으로 뉴욕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은 9.11에 이어 정전 사태까지, 참으로 일어나도 대형사고가 터져 세계를 놀라게 한다.큰일을 겪은 뉴요커들은 지하로 가는 전철을 타게되면 ‘비상구는 어디인가?’를 두리번거리고 낯선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면 ‘비상계단 위치는 어딘가?’ 눈짐작으로 찾게된다고 한다.하룻밤을 암흑천지로 만들어버린 거대한 힘을 보면서 문명의 헛껍데기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미국의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바로 전기의 발명 이후부터이다. 근대 과학기술의 상징인 전기의 보급으로 미국과 한국의 가정에 각각 미친 영향은 참으로 달랐다.1900년대 초반 미국의 작은 마을에 전신주가 세워지면 그날 마을축제가 벌어졌다. 5센트짜리 영화관이 문을 열었고 라디오, 전기축음기, TV 등이 가정에 오락을 제공했고 시어스 진공세탁기, 자동 토스터, 접시 닦는 기계 등이 노동력을 덜어주어 주부들에게 여가 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이에 대중문화가 급격발전, 사람들은 인생을 좀더 즐겁고 다양하게 즐기기 시작했다.과학 문명의 발전을 온몸으로 체득하며 자신의 생활 패턴이 바꿔지는 것을 느낀 미국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전깃불의 혜택을 일제하에, 그것도 극소수만 받아들였다.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최초의 전선이 개통되며 외세 침략의 발 노릇을 한다하여 의병들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고 특히 전차는 개통 일주일만에 교통사고가 나 군중들이 전차를 불태우는 등 수난의 시대를 거쳤다.
1920년 개통된 전화는 ‘어른을 전화통으로 불러내다니 방자한 것!’으로 취급되고 1926년 설립된 경성방송국의 방송 청취 이벤트에는 50~60대 조선인들이 죽기 전에 이 이상한 조화를 한번 보아야겠다며 몰려들기도 했다.
전기가 놀라운 문명의 혜택을 나누어주어 풍요한 삶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는 전기가 없던 100여년 전에도 충분히 행복했다.미국은 가스등불과 마차 시대였다. 오렌지빛 등불을 높이 쳐들고 그리운 이를 만나러 밤길
을 가고, 차양있는 모자의 긴 끈으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감싸고 마차 여행을 떠나는 등등, 웬지 무드 있어 보이지 않는가.
한국은 1970년대 중반에도 시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 많았다. 석유 호롱불 아래 그림자놀이 하는 아이 옆에서 단아한 모습의 여인이 새하얀 빨래를 다듬이돌 위에 올려놓고 뚝딱 뚝딱 방망이질하는 모습, 심장 박동같은 그 소리는 기억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지 않는지.
우리는 갑자기 불치병에 걸리거나 큰 일을 당하면 ‘내가 남에게 못할 죄를 지었나?’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에 지나지 않고 우리의 시간, 계획, 미래가 마비되어 버리는 사태를 미리 막을 수는 없지만 언제 어디서라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평생 이룬 것이 일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것, 그 돌발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전 사태는 인간의 방자함과 오만에 ‘너 이래도 잘난척 할래?’ 하며 경각심을 갖게 해준 것으로 받아들이자. 비단 이것이 개인뿐이겠는가? 사회, 국가에도 해당된다.
경영주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도산한 기업들, 국내 문제도 산적한데 나라 체면, 위신 생각하다 위기에 빠진 한국이나 미국 등도 해당될 것이다.
이번 정전 사태는 오랫동안 우리를 반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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