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가을엔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
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가을의 기도> 전문.
인생의 황혼을 흔히 가을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요, 여름내 풍성했던 오곡이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인생도 나이 들면 지난날의 수확을 정리하며 황혼 곧, 죽음을 맞을 준비를 아름답게 해야한다.
다행이 뉴욕에 사는 한인들은 가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뉴욕은 한국과 거의 같은 사계절이 있기 때문이다. L.A.에서 약 6년을 사는 동안 겨울을 느낄 수 없던 때가 있었다. L.A.의 겨울은 뉴욕의 가을 같다. 그래서인지 뉴욕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국의 향수를 더 느끼게 한다.
성큼 다가온 가을, 길가엔 이르지만 하나 둘 낙엽이 구르기 시작한다. 9월이 가고 10월이 되면 산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 것이다. 사계절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자연의 법칙은 사람의 법칙보다도 더 정확하다. 사람은 사람을 속여도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하나 둘, 떨어져 구르는 낙엽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해 본다. 낙엽은 여름내 나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햇볕을 끌어들이던 푸른 잎들이다. 그 잎들이 본분을 다하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어 팔랑개비처럼 길에 떨어진다. 떨어지기만 하나,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쓰레기차는 사정없이 낙엽을 쓸어가 버린다.
그래도 낙엽은 아무런 항거도 않는다. 이러한 낙엽을 볼라치면 그 낙엽들에서 겸손과 희생의 극치를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이름 없이 사라지는 낙엽들. 그들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올 새 봄을 기약하며 또 다시 필 잎들의 나무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사라지는 것일 게다.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한다. 봄은 여성이 타고, 가을은 남성들이 타서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남성들은 가을이 되면 왠지 모르게 울렁거리는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어디론지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 된다. 홀로 사는 남성들이야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가족이 있는 남성들이야 마음뿐일 게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주말이나 연휴를 통해 가을 소풍
겸 다녀온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달래 줄 것이다.
남성의 계절은 남성들이 사랑을 싹틔우는 계절이기도 하다. 젊은 총각들이 마음 설레며 짝을 찾는 계절이다. 그 동안 사모해 왔던 여성이 있다면 용감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사랑이 싹트고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으로 들어가는 성숙한 계절이기도 하다. 아직도 님이 없다면 낙엽 지는 골목에서 님을 기다려 봄도 괜찮을 게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모두를 철학자로 만드는 계절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절이다. 좀더 보람있는 남은 생을 살기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는 계절이다. 이렇듯,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는 더욱 생각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서늘함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낙엽처럼 떨어져 버릴 인생이라도 잎의 본분을 다해왔나 호올로 되돌아보는 서늘함이다. 그래서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금년도 가을이 되며 몇 달 남지 않은 한 해를 다시 되돌아 볼 때이다. 어떻게 살아왔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나. 숙연한 마음으로 반성해 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금년의 남은 날을 이웃을 위해 조금이라도 봉사하는 삶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시작된 가을과 함께 멀리 두었던 책들을 다시 머리맡으로 옮길 때이다. 책 속에서 가을의 풍성함을 찾아 우리내 인생도 보다 성숙한 삶으로의 길을 가게 인도해 보자. 가을에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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