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의 영어표기인 ‘umbrella’는 ‘그늘’이란 뜻의 라틴어 ‘umbra’에서 유래됐다. 우산은 비보다는 강렬한 햇빛을 차단할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우산의 원조는 피부관리에 신경을 쓰는 여성들이 지금도 애용하는 양산인 셈이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등지에서 주로 귀족들이 사용하던 우산은 파라솔 모양이었다.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휴대가 편리한 우산을 여성의 양산용으로 만들면서 보편화했다. 해 가리기와 멋 내기의 이중효과로 여성들 사이에선 ‘잘 나가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남성에게 우산은 유약함의 상징처럼 인식됐고 비가 오더라도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타거나 아니면 다른 방도를 취할망정 우산 속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공공장소에 여성을 동반했다가 비바람이 몰아칠 경우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답시고 우산 속에 ‘동거’하면 몰라도 평상시에 우산을 썼다간 ‘왕따’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무역을 하던 영국 박물학자 조나스 한웨이즈가 1750년 현재 형태와 같은 우산을 만들어 지니고 다녀 우산 속이 ‘남성 금지구역’이란 통념에 도전했다. 화창하게 갠 날에도 우산을 갖고 다니다 동성애자라는 놀림도 받았지만 그는 30년 동안 끈기 있게 ‘우산 홍보’에 충실했다. 그 덕에 1800년대부터는 우산이 남녀구별 없이 널리 사용됐다.
한국에서는 구한말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우산이 전해지긴 했지만 일부 계층에 의해 사용되다가 1960대 중반부터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산이 부유층의 전유물이니, 남성 금지품목이니 하는 것은 그야말로 옛날 얘기일 뿐이다. 별 이슈를 낳을 만한 물건도 아니다.
그런데 우산이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군용 지프를 탄 노무현 대통령이 국군의 날 행사 도중 비가 온다고 해서 약 15분간 우산 속에 들어갔다. 열병에 참여한 군인들은 모두 부동자세로 비를 맞는데 사열을 받는 군 통수권자가 우산 속으로 ‘피한’ 모습은 이색적이다. 비 맞는 장병들과 비 피한 군의 수장은 매치가 안 된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우산을 국방장관이 받쳐들었다는 사실이다. 왕조시대에도 우산은 궁녀나 내시가 받들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비서들이 이를 대신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은 탈 권위주의를 외치고 개혁을 부르짖는 정권이다. ‘옥체’가 젖을세라 우산을 펴든 장관의 조아림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를 정중히 사양하고 의연하게 비를 맞았어야 했다.
’몸을 닦는 일’이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이라 했다. 진정한 개혁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조용한 자기변신에서 움튼다. 보다 나은 사회 건설은 가까운 곳,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상식을 일깨우는 현장이었다.
<박봉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