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국 생활 새내기라 집에 배달되는 우편물이라고는 돈 내라는 청구서밖에 없던 홍지인(27, 프로덕션 어시스턴트)씨. 12월 들어 메일 박스를 확인하던 그녀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보낸 빨간 색 겉봉의 카드들을 손에 쥘 때마다 반가움에 눈 맞은 강아지처럼 두 발을 팔짝거린다.
그녀보다 바쁘면 더 바빴지 결코 더 시간이 많지 않은 그들의 카드를 펼칠 때마다 그녀의 가슴엔 감동의 파문이 인다. 이메일 한 줄 쓰기도 바쁜 세상에 언제 이 예쁜 카드를 골라 직접 친필로 문구를 적어 넣고 우표까지 붙여 우체통에 넣었을까.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카드를 겸한 연하장을 보내려 하던 터에 막상 카드를 먼저 받고 보니 조금은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그냥 마켓에서 벌크로 사다 몇 자 적어 보내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지 않나 싶어진 것.
지난 주말 그녀는 아트 재료 상,마이클스(Michaels’)에 들러 색색의 종이와 반짝이, 스티커, 아플리케를 잔뜩 사왔다. 지난 한 해 동안 카드를 만들어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꽃이 찬란할 때면 그 꽃잎을 책갈피에 넣어 말렸었고 낙엽이 아름답던 시절엔 사춘기 소녀처럼 이를 주워들기도 했던 것.
작업을 개시하려는 그녀는 우선 가위를 들어 색색의 도화지를 카드 크기에 맞도록 자른다. 한 가운데에는 마이클즈에서 사 온 아플리케를 글루를 이용해 떨어지지 않도록 붙였다. 크리스마스라고는 하지만 모두가 별, 트리, 천사 일색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상을 예술처럼 바꾸어나가는 친구에게는 이젤에 캔버스, 붓, 물감 미니어처를 붙여 만든 아플리케를 붙이고 To the true artist 라는 문구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좀처럼 쉴 줄 모르는 남편 천세원 씨에게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파라솔 아래 누워 선탠을 하는 아플리케를 붙였다. 카드를 받는 순간만이라도 그가 한 조각의 휴식을 즐기기 바라는 마음을 더해서.
빨간 색 도화지에 천사 아플리케를 붙이고 풀을 칠한 후 반짝이 가루를 뿌리면 화려한 크리스마스카드가 완성된다. 굳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쓰질 않았다. 카드 안 종이에 쓰는 인사말에도 즐거운 성탄을 보내라는 구태의연한 말보다는 한 해 동안 그녀에게 보여준 친구와 선배들의 사랑과 우정에 감사한다는 인사와 그녀에게 있어 그들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적어 넣었다.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두고 사는 세대의 그녀이지만 주소 역시 직접 친필로 적었다. 눈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는 우표를 붙여 카드를 부치려 우체국에 달려간 그녀는 청마 유치환의 이영도를 향한 마음을 헤아릴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박지윤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