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제2회 도요타배 북미 바둑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던 맨하탄 펜실베니아 호텔 대연회장. 한 참 동안을 바둑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한 소년이 신중히 돌을 들어 바둑판 위에 천천히 내려놓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상대편에 앉아 있던 30대 남성은 반상 귀퉁이에 돌을 놓으며 일어나 소년에게 악수를 청한다.
독학으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지 9개월 밖에 안된 최지원(브롱스사이언스 고교 11학년·영어명 데이빗) 군이 이번 대회 D디비전(아마추어 3∼4급)의 우승자로 확정된 순간이다.
최 군의 우승을 예상치 못했던 대회 참가자들은 최 군이 정식 바둑교육 코스를 밟은 쟁쟁한 출전자들을 하나 둘씩 차례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자 ‘바둑 천재’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했던 대회 관계자들도 독학으로 배운 최 군의 바둑 실력이 남달라 잘만 지도한다면 훌륭한 프로 바둑 기사로 커 나갈 수 있는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바둑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최 군이 바둑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남다르다 못해 특이하다. 일본 만화를 유독 좋아해 지난해 친구로부터 바둑만화 ‘히카루노고’를 빌려 읽고 난 후 바둑에 흠뻑 빠져 버린 것.
한국에서도 ‘고스트 바둑왕’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이 만화의 주인공 ‘신도우’에 매료된 최 군은 이때부터 인터넷 웹사이트를 찾아 홀로 바둑 두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처음엔 만화 주인공이 인터넷을 통해 대국을 펼치는 모습을 그저 따라하고 싶었던 건데 나중엔 나도 모르게 바둑에 흥미가 붙더라구요. 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바둑을 두면서 한 수 한 수 배워가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구요.요즘에는 바둑 책도 보고 기원에도 가끔 나가면서 얼마 전 장래 희망을 ‘선생님’에서 ‘바둑 기사’로 바꿨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최 군은 기회가 되면 정식 바둑교육 코스를 밟아 조훈현 9단이나 이세돌 9단과 같은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며 쑥스러운 듯 빙그레 웃는다.
바둑 기사가 되고 싶다는 지원이의 꿈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어머니도 이제는 기원에 보내 줄만큼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틈만 나면 인터넷과 책을 보며 혼자 바둑을 배워가는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지원이가 원래 집중력이 뛰어나선지 어려서는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지 않더니만 바둑을 배울때도 몇날 몇일을 인터넷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더라구요. 혼자 배운 실력으로 대회에서 우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어머니 최기옥씨는 최 군이 바둑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바둑보다는 여느 부모처럼 교수 등과 같은 전문인으로 성장해주기를 원하는 바램에 한동안 말렸다며 이제는 자신이 원한다면 여름방학 때 한국에 보내 전문기관에서 테스트라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최 군에게는 바둑기사외에 꿈이 한가지 더 있다. 자신이 재학중인 브롱스사이언스 고교에 바둑 클럽을 결성하는 것.수개월 전부터 바둑클럽을 만들려고 회원을 모집하고 있지만 인원이 모자라 학교장 인준이 안되고 있다는 최 군은 내년 졸업하기 전까지 꼭 바둑클럽을 만들어 미국 학생들에게도 바둑을 보급시켜 주고 싶다며 활짝 웃는다.
<글=김노열 기자·사진=김재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