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골목길 구멍가게마다 시장마다 수북하게 쌓여진 감(홍시)을 만나게 된다.
투명한 주황빛 색을 드러내고 누군가의 손길이 와 닿길 기다리는 자세로 조용한 침묵속에 가을 찬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는 모습들. 가을을 알려주는 과일들중에서 제일 가을색과 닮은 모습을 한 열매다.(중략)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길을 지나 시골가는 친구 집으로 가던 가을날, 공주로 가는 시골길은 집집마다 잎새 진 붉은 감들을 한그루씩 안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 색이 또렷하게 눈으로 다가왔던 감나무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저 스스로 숙성된 모습을 지닌 맛을 가진 홍시, 뿌리에서 올라온 땅의 깊은 물을 안고 가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태양아래 맛을 익힌 그 맛엔 분병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찌 그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시간이 지나면서 흔하게 익어간 외로운 홍시 맛에 비할 것인가.
마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서있는 감나무는 잎 떨어진 가지에서 덜익은 감들을 품은 채 가을하늘을 향해 제 몸을 태양아래 맡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그 겸손한 모습을 바라보며 난 인생을 생각해 본다.
이제 내 나이 마흔을 넘어 중년을 향해가고 있다면 내 생은 초가을 감이 익어가는 길목에 들어선 것인가.
그렇다면 난 자연 아래 스스로 성숙되어져 가는 감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아님 채 익지 않은 감처럼 미리 따내어진 단감이 되어 세상속에서 본래의 제 맛을 잃은 채 조금은 단 맛을 낸다는 기분으로 우쭐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직은 떼어내지 않은 가지위에 맺어있는 감이라면 지금은 익어가는 때다. 그렇다면 겁내며 살아갈 일이다.
태양아래 익어가는 단감이 되어 흐릿한 색이 아닌 붉고 선명한 제 색을 내며 그 맛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내안의 단단해진 세상의 티끌같은 때를 벗겨내며 가끔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제대로 살 일이다.(중략)
이 생이 단 한번 뿐이라는 기분으로 살진 말아야겠다. 지금 이 생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다면 나의 현재의 모습은 다음생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면 함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본다.
내가 아끼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태양아래 익어가는 감처럼 함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제 맛을 내기위해 인내하는 사람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그 자연 안에서 스스로 깨달아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아가는 사람....(중략)
사는 일은 어차피 견디어 내는 것이다.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고 겨울엔 눈도 내린다.
그 안에서 견뎌내며 우린 우리 앞의 생을 그저 그런맛을 내는 생이 아니라 깊은 맛을 낼 줄 아는 나무처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이 너무 힘들 때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미련없이 버려도 보자.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들어하는 그 힘든것의 나를 바라보자는 얘기다. 그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 주자. 살아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위해 아픈 것이다....(중략)
쉽게 떨어져 저 혼자 익어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태양아래 익어가자. 아픔을 견딘만큼 열매는 더욱 풍성할 것이다.
나뭇가지 위에 그 안에서 익어 터져버릴지라도 끝까지 붙어 아름다운 열매로 살아보자. 우리의 가지는 사랑이고 인내이며 겸손이며 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작가 지경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