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새로 개봉된 예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상영 전부터 반 유대적 영화라느니, 폭력영화라느니 시비가 있었고, 상영 뒤에는 십자가 처형 장면이 너무 참혹, 어느 노인이 심장마비를 일으켰다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십여 전에 상영됐던 ‘마지막 유혹’이라는 영화 역시 예수의 인성을 부각시켜 논란을 일으켰고, 예수의 인도행적을 추적한 TV 프로그램등도 일부 기독교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기독교보다는 반 기독교 쪽에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예수가 그토록 참혹한 고문 속에 살아있을 수 있었겠느냐…, 과장이 아니냐, 괜히 유대인들만 잡는 것 아니냐, 성경이 사실이었겠느냐는등 뉴스가 온통 ‘그리스도의 수난’에 집중되어있다.
그러나 논란의 진위야 어찌 됐든 일개 영화가 그토록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사고 있는 점은 현대사회가 그만큼 스크린의 파워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일개 지나간 사건일망정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그래픽으로 재현할 경우 이것이 시각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필름)’을 대여, 교인들에게 상영할 계획에 있고 교계의 빗발치는 성원으로 영화는 이미 개봉전부터 대박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이러니는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 그리스도의 말씀. 진실의 촉각이냐, 아니면 스크린의 힘이냐?
현대는 종교마저도 과학시대의 산물인 스크린의 힘 앞에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교회’와 ‘극장’의 다른 점을 설교한 적이 있었다. 이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 교회와 극장의 다른 점은 교회에는 창문이 많고, 극장에는 창문이 없는 점이라고 했다. 즉 교회는 세상으로 향하는 빛이 있고, 극장에는 암흑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극장은 오락을 찾는 곳이고, 교회는 진리를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영혼이 참회의 눈물을 흘릴지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러나 일부 저명 목사들까지 들고일어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치켜세우고 있다고 하니 영화의 힘이 세긴 센 모양이다. 구도의 길이 갈수록 갈팡질팡해지고 있다.
어느 종교에서는 참 진리란 오직 자신의 등불만 의지해야 한다 했다. 구원이 일개 극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이미 예전에 구원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구원이 교회의 숫자만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세상을 이미 예전에 밝아지지 않았을까?
아무튼 멜 깁슨의 엉뚱한 신앙심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영화로 인한 논란이 너무 과민해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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