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멜 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마지막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리스도 당시의 역사, 문화, 언어적 상황을 그대로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에 있다.
우리는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배웠기에 그리스도가 놓인 시대적 정황과 문화적 환경을 체험하기 어렵다. 이 영화가 그리스도 당시의 문화 환경의 고증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은 문자로 기록된 사실에 현장감을 부여해주는 효과를 낳는다.
그리스도가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히고 당시 유대 사회 지도층과 로마 권력과의 정치적 단합으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처형된다는 성경의 기록은 이미 극적 요소가 강렬하기에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멜 깁슨은 이사야서 53: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입었도다.)를 들어 그리스도의 수난을 복원하려고 시도했다. ‘찔림’, ‘상함’, 징계’ 그리고 ‘채찍에 맞음’ 이런 모습을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멜 깁슨이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을 현장감 있게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틀은 1960년대 셈 페킨파 감독의 영화 ‘와일드 펀치’이후에 헐리우드에 등장한 폭력의 미학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 미학에 바탕해서 잔혹극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에서 화면에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고 살점이 찢겨져 묻어난다. 멜 깁슨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고증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은 헐리우드 폭력의 미학이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비록 그리스도 당시의 문화적 고증에 충실했다 해도, 그래서 숭고미까지 연출했다 해도, 할리우드의 미학과 논리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하려든다는 것에 내가 느끼는 거리감은 컸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그려낼 때 우리시대의 옷을 입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옷이 그리스도의 모습에 어울리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만하다. 그토록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리스도의 고난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을 억압하는 죄의 세력에 대한 저항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심오함과 아픔은 그가 몸소 통과한 폭력의 강도에 있질 않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오늘날 문화에서 흔히 발견하는 터프가이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가 통과한 폭력은 기껏해야 그가 겪어야 할 리얼리티의 그림자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멜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고 나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눈물까지 흘린 그리스도인들이 적잖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의 물결을 몰아오고 있음을 본다. 나는 그 물결의 진실성을 부인하질 않는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감동케 한 것은 이미 우리 마음에 있는 그리스도로 인한 것임을 말하고 싶다.
우리 마음의 그리스도와 멜 깁슨이 그려낸 영상에 드러난 그리스
도와 공유할 수 있는 것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는 것도 우리 믿음을 건전하고 튼튼하게 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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