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재판소는 예상대로 국회가 가결한 대통령 탄핵 결의안을 기각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복권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노무현 대통령의 무조건 승리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헌법 재판소가 대통령이 위법과 위헌 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명백히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대통령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은 저질렀지만 그것이 해임할 정도로 중대한 것이 아니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헌재가 굳이 이런 사실들을 적시한 것은 앞으로 국정을 운영할 때 좀더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는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한국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란 정치적 위기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마무리된 것은 한국 정치 발전의 한 과정으로 봐 좋을 것이다. 이번 일로 과거 “통법부”로 불릴 정도로 존재가 미미했던 법원이 3권 분립의 한 축으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친노·반노의 한 쪽 세력이 이기고 졌다기보다는 입헌주의의 승리라 보는 것이 옳다.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헌재는 탄핵에 찬성한 소수 의견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원칙적으로는 이를 밝히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를 밝히는 게 오히려 정치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수 의견을 걸고 넘어져 이를 정치 쟁점화하며 연일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탄핵 정국은 완전히 마무리 됐고 남은 문제는 대통령 직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과 거대 여당이 된 열린 우리당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당을 이끌어왔던 정동영 대표를 입각시길 계획으로 있다. 열린 우리당내에서 온건 실용주의자인 정 대표를 내각으로 불러들이고 민권 변호사 출신 천정배씨를 집권당의 원내 대표로 삼은 것을 보면 내각은 실용주의, 당은 개혁 주도로 운영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열린 우리당은 몸은 갑자기 자랐지만 정신적 발육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청소년처럼 정치적 미숙아이다. 한국 국회가 한 단계 성장하려면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정책 토론을 벌이는 심의 정치 수준으로 가야 하는데 여당이 그럴만한 여유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수의 힘을 바탕으로 한 밀어붙이기 식 구태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탄핵을 계기로 야당은 민의를 수렴하지 않은 돌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배웠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회의원은 항상 민의를 살피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을 해야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탄핵을 강행한 야당은 민의를 존중하기는커녕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4·15 총선 결과는 앞으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심부름꾼임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헌재 결정과 4·15 총선 승리로 힘있게 집권 2기를 설계할 수 있는 모멘텀을 얻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헌재 결정은 지난 1년 여 동안 노 대통령이 해 온 일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아니라 따가운 경고이다. 탄핵 직전까지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추락했었다. 노 대통령이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국정을 추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김용직
성신여대 정치학·UCLA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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