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뜰을 정리하다 우연히 처마 끝을 보았습니다. 연푸른 페인트로 곱게 단장된 처마 끝, 정말 바람에 휘날리는 먼지 한 자락도 내려앉기엔 너무 깨끗한 그곳. 저의 마음이 머물기엔 너무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까만 연기에 그을려 있는 초가집 서까래 한쪽 끝, 그 끝에 꾸려있을 제비집이 생각났습니다. 한가한 뒤편에 집을 지으면 좋으련만 꼭 우리가 드나드는 앞마루 위에 우리와 같이 살겠다고 우기던 제비.
집짓기가 끝나 새끼가 부화해 나오면 어느 덧 초여름이 되었고, 제비 똥 닦아 내는 일은 어머님의 전담이 되셨지요. 또 한 걸음이 무거워 검정 고무신 끌며 쟁기 짐 지시고 들어오시는 아버님 한 손에 들려 있는 개울가에 버려진 한 조각의 낡은 판자. 아마도 아버님 마음의 눈으론 한 조각 판자 위에서 새끼 제비들의 훌륭한 운동장을 보셨겠지요.
그리고 잠자리 모기 쐐기 애벌레를 물어온 제비의 이른 아침 식사 잔치 소리에 질세라 새벽 샘물 길러 없는 반찬에 도시락 챙겨 주시던 어머님.
돌아 갈 수 없는 그 때가 그립고, 다시 무릎 맞대고 나눌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봄, 봄 장마 끝에 강가에 밀려온 박속을 가져와 저 보고 씨를 골라 심으라 하셨지요.
그때 저는 이미 흥부전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웠답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선 아무 말 아니 하셨지만 저는 아버님 마음을 알고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저도 아닌 줄 알면서도 은근히 믿고 싶었거든요.
시간이 지나 어느덧 새끼 제비도 노랑 부리가 점점 검정 색으로 바뀌고, 빨래 줄 위에 앉아 지나가는 고추잠자리를 능숙하게 사냥하는 추석이 지난 어느날 오후, 제가 지붕에 올라가 손으로 박을 두들겨 잘 익은 두통을 땄었지요.
그리고 톱으로 박을 켜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 아마 요즈음 몇 억짜리 복권을사서 맞추어 보는 척박하고 물질주의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요.
아버님, 미국에 온지 벌써 20년이 다 되지만 이 곳이 한없이 낯설기만 합니다. 아직도 제가 철이 덜 든 까닭일까요. 아니면 너무 세속적 철이 들어 버린 까닭일까요.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박을 타던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놓지 않는지 내가 세상을 놓지 않는지 무척이나 혼동이 되네요.
추혁춘/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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