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예배가 끝난 후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들어왔다. 여러 해 동안 찬양팀에서 함께 활동하며 알고 지내오던 K가 호수처럼 파란 눈이 빨갛게 된 채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늘씬한 팔등신 몸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뛰어난 미모에 비해 수수한 성격, 패션모델 겸 에이전시의 직함을 갖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 K가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충격이었다.
얼른 다가가 이유를 묻는 내게 울먹이며 들려주는 그녀의 대답이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최근에 그녀는 석 달 남짓 간격으로 교통사고를 두 번 겪으면서 재정적으로 손실을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과 마음에도 무리가 왔다.
그녀의 직업상 완쾌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쉴새 없이 라스베가스로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야 했고, 양·한방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데도 목의 통증과 두통에는 별 차도가 없으며, 통증을 견디며 미소짓는 얼굴로 무대 위에서 워킹을 해야만 했단다.
두 번째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던 날 밤에, 난생 처음 그녀에게 안부와 위로의 말로 몇 줄 채운 이메일 한 통 보내놓고 내 할 일 다한 것마냥 여기고 있었던 나의 이기심, 무관심이 진정으로 미안했다.
그 몇 줄의 글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서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그동안 간간이 흘리던 그녀의 이야기를 무심히 들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쓰디쓴 물을 뒤집어 쓴 것마냥 씁쓸한 심정이 되었다.
내면보다는 외모지상주의, 경쟁과 긴장의 끈을 잠시도 늦출 수 없는 자신의 직업에 오래 전부터 넌더리를 내고 있었지만, 막상 그만 두면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래 전 지금의 자신과 같은 불혹을 갓 넘긴 나이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 것과, 얼마 전에 잇달아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들이 연결되어 자신의 삶도 그렇게 마감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곤 한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것이 두렵고 슬퍼 내내 마음이 무겁고 외롭다는 것이다.
좋은 크리스찬 남성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바람이지만 데이트를 신청해 오는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소박한 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뿐이니 참으로 답답하다는 것이다.
더 깊은 신앙으로 곤고한 지금의 상태를 이겨나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함께 듣고 있던 A도 밝히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아 나를 또 한번 뜨끔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마이너리티로서 부족함을 지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단속하려는 데만 급급했던 사실을 반성했다.
그 날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와 기도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서로가 주고받았던 어떤 말이나 행위보다 진실했고 유리알만큼이나 투명했으며, ‘이해’와 ‘관심’이라는 관계로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반복해왔던, “안녕, 요즘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 좋아, 너는?” “응, 나도 좋아.” 이런 식의 수박 겉핥기식 인간관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점검해 볼 참으로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노력 없는 겉치레 관심은 우리를 더 우울하게,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그런 관계의 끝은 모래성 쌓기만큼이나 허무하게 끝나 버릴 수도 있음을 생각해볼 일이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30분 이상의 자투리 시간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투리 시간 동안만이라도 자주 불러주지 못했던 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과 ‘이해’의 단추를 끼우는 일은 우리 각자의 몫이요, 아름다운 책임일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