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호 목사(헌츠빌침례교회)
누구나 생명까지라도 주면서 사랑할 상대를 그리워하며 산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상대가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과 행복이 좌우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러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모든 것을 주며 기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의 기간이 흐르고 난 뒤에 실망을 맛보기도 한다.
미완성된 인간을 사랑한 까닭이다. 그리곤 다시 영원한 사랑의 상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실망시키지 않을 사랑의 상대가 하나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알면 알수록 더욱 나의 생명과 삶 전체를 바침에 더욱 더 가치가 부여되고 사랑의
기쁨이 깊어지는 상대가 있다. 이 사랑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신앙의 입문이고 사랑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을 신앙의 성숙이라 부른다.
이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반복되는 종교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으로부터 더하여진다. 나와 이웃과 세상의 관계 속에 있는 진리에 관한 것을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나의 삶에 적용하면 할수록 지혜로워지며 인격이 아름답게 성숙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진리와 나와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뜨거운 가슴을 가진 행복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이 인생의 꿈이 되고 길이 되고 우리의 삶에 동반하는 영원한 상담자가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 가슴으로 느껴진 신앙을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신앙을 신학화 하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신학화 된 신앙이 되면 될수록 다시 진리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다시 뜨거운 가슴이 된다. 신앙과 신학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가슴과 머리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교회만 나와서 나의 필요한 것을 구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그러한 신앙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 가운데 더욱 논리적인 이해가운데 서는 신앙으로 발전하여야 한다.
진리를 믿기는 하지만 아직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상태를 신앙이라고 표현한다면 신학은 이러한 신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숙된 신앙이 되기 위해 신학화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신학을 하기 위하여 모두 신학교를 가라는 말이 아니다. 신학은 신학교에서만 하는 학문이 아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여도 신앙과 분리된 신학이라면 이 신학은 이중 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해로운 것이 된다.
청소년들이 자라서 교회를 떠난다고 아우성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진정한 깨달음이 있는 신학화된 신앙으로 성장시키지 못하여서이고 삶으로 적용되는 신앙으로 성숙되지 않아서이다.
이러한 신학화 하는 신앙이 되기 위하여 겸손하고 순수한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직한 물음을 묻고 고민과 갈등도 경험하여야 한다. 이러는 중에 우주에 가득한 진리와 깊은 사랑의 관계가 되어 그 분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된다. 이러는 가운데 순수하고 겸손해지는 훈련이 되어 예수를 닮은 겸손하고 순수하고 지혜로운 인격체로 점점 성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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