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철 칼럼
먼저 여기 실리는 이야기는 언제나 본인의 동의하에서 쓰는 글임을 밝혀둔다. 클라이언트(환자 또는 피상담자)가 몇 번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면 리셉션니스트와 친해져서 서로 대화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40년 동안 하루에 두 세갑씩 담배를 피워서 폐기종으로 호흡곤란을 겪고 거의 포기상태인 어머니를 딸이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 모시고 왔다. 첫 상담에서 “아주머니는 하고싶은 것하고 피우고싶은 거 마음대로 피우다가 갈 때 가겠다 이런 마음을 정하셨군요”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아니예, 담배는 피우고 싶고 오래 살고도 싶고 그래서 온기라예”라고 대답한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몹시 여위었고 입맛이 없고 잠을 못 자고 아주 불안해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 증세를 위해서 항우울제 레메론(remeron) 치료를 시작했다. 정성어린 딸의 충고와 엄격한 규제로 6개월만에 담배를 끊고 요즘은 니코친 담배로서 만족하며 지낸다. 따님도 보람을 느끼고 본인도 신체적으로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입버릇처럼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을 되뇌는 어머니가 걱정스러워 딸이 리셉션니스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녀가 나름대로 위로의 말을 했다. “세상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는디, 큰애기 시집 안간다고 허는 것허고, 할매가 빨리 죽고 싶다는 것 허고, 장사 믿지고 판다는 것잉께. 할매말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말고 걱정일랑 마시요잉.”
상담실에 들어와서 “아주머니가 자꾸 죽고 싶다고 얘기한다는데 솔직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까?”라고 물으니, “사실은요, 죽기는 싫고, 살자니 미안코... 심정이 그래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정말 괴로운 것은 새벽에 잠이 깨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속에서 열기가 오르고 너무 괴로워 안정제를 좀 달라면 딸이 중독 된다고 주지 않는다는 것. “그럼 속에 화나는 일이 있으십니까?” 옆에 있는 딸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나는 일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 “혹시 자식이 섭섭하게 하든가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딸 둘 아들 둘을 길렀는데 모두 다 성공했습니다. 어릴 때는 요지단지처럼 애지중지 길렀지요. 모두 성공한 편입니다. 자기들 할 수 있는 데까지 모두 합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딸이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애지중지 열심히 키운 자녀들이 어머니가 아픈데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면 그것만해도 화병이 생길 만도 하네요”
그러나 이 할머니는 한사코 자녀들 때문에 그런 일이 있는 건 아니라고 부정한다. 모든 정성을 다해서 자녀를 키우고 늙고 병들어 자녀의 도움을 받으며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사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 아니겠는가?
“이번에 담배를 안 끊었으면 아주머니는 병원의 산소탱크에 의지해 숨쉬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자녀들 재산이 병원비로 모두 거덜났을 텐데 그 맛있는 담배 맛도 마다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주시는 것만 해도, 이 정도 만해도 자식에게 도움을 준거니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몸 아프고 외로울 때 자녀들 생각이 왜 안나겠냐만은 혹시나 부담 줄까 소식마저 잘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어머니 마음인가. 누가 어머니와 자식은 한 몸으로 태어난 인연이라고 말했던가. 문득 시인 김호길님의 시 ‘보리수 그늘’에서 중에 한 구절이 생각난다. ‘티끌 수보다 많은 죄의 짐을 부려놓고/ 무릎꿇어 향 올리고 우러러 두 손 모으면/ 눈물도 죄만 같아서 몸둘 곳을 모릅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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