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때 의형제처럼 지낸 재미 원로의사 손원태 병리학 박사가 28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시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0일 미국의 손 박사 유가족에게 조전과 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1일 북한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전했다. 미국에서도 2일 오마하시 호프 프레스피테리안 교회에서 손 박사 추모예배를 가질 예정이라고 `손정도 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밝혔다.
작고한 손 박사와 김일성 주석의 인연은 손 박사의 아버지인 손정도(1882~1931) 목사로부터 시작됐다. 손 목사는 상하이)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냈고, 대한적십자회를 창립한 독립운동가였다. 도산 선생과 가까웠던 손정도 목사는 임시정부에 실망하고 지린성 룽징으로 가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김 주석은 이 교회에 다니면서 손 목사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손 목사의 첫째 아들은 한국 해군 창설의 주역인 손원일 제독, 둘째 아들이 작고한 손 박사이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와 YWCA 회장을 지낸 손인실씨가 그의 동생이다.
손 목사의 자녀들과 김 주석이 친형제처럼 지낸 특별한 인연은 김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손정도 목사」편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회고록에서 김 주석은 지린성에서 일제에 의해 투옥됐다가 감옥을 나와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손정도 목사의 집이었다. 일곱달 동안 꾸준히 옥바라지를 해 온 손정도 일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떠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버지처럼 따랐던 손씨 일가와 친교를 회상했다.
손 박사는 1991년 북한 해외동포영접부의 초청으로 부인 이유신씨와 함께 처음으로 방북해 김 주석으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의 생전 약속에 따라 1994년 8월 11일 상중에도 불구하고 손 박사를 평양으로 불러 고위 당ㆍ정 간부들을 대거 참석시킨 가운데 80회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베풀어줬으며, 손 박사를 위해 별장(철봉초대소)을 지어주기도 했다.
당시 손 박사는 상중이라 안된다면서 극구 만류를 했으나 김 국방위원장은 아버지의 뜻이라며 생일잔치를 강행토록 해 손씨 일가에 대한 김일성 부자의 배려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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