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금으론 부족”… 회사 로고·제품 직접 노출 허용
프로그램 스폰서들
“자막 한 줄로는 섭섭”
일반 CF광고 수준
일각선 ‘상업화’우려
“어서 오십시오”. 공영TV 방송 기부금 모금 프로그램의 호스트처럼 보이는 남자가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치포틀리 멕시컨 그릴’의 기부금으로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뒤에는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부금 모금’이라 쓰인 현수막 아래 전화를 한대씩 앞에 놓고 앉아 있다. 그러나 호스트가 말하는동안 전화벨 소리가 자꾸 울리는데 아무도 받는 사람은 없다.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부리토를 먹느라고 바쁘기 때문이다.
마치 기부금 모금 프로그램 같아 보이는 이 장면은 지난 4월부터 전국의 150개쯤되는 공영TV가 내보내고 있는 한 요리 프로그램에 곁들여지는15초짜리 ‘맥도널즈’ 소유 멕시컨 식당 체인 ‘치포틀리’의 광고다. 모금운동을 풍자한 이 광고는 공영 TV의 달라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영리 프로그램을 제작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 후원자들을 소개하는데 이름 한줄 대신 일반 광고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허락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광고 없는 공영 TV 프로그램의 방송 전후에 후원자 이름를 밝히는 시간이 자꾸자꾸 보통 광고와 비슷해지고 있는 것이다.
2004년 3월에 공영TV 방송국들의 비영리 회원단체인 PBS가 프로그램 제공자 공개 기준을 완화시키면서 후원자가 직접 출연하거나 제품을 카메라 앞에 진열하는 일이 처음으로 가능해졌다. 이에 척 E 치즈, 인텔, 맥도널드, 마이크로소프트, 립튼 누들 숩 같은 브랜드와 제품들은 새 지침을 이용하여 회사 슬로건을 포함시키는등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하고, 사람들이 그 회사 제품을 먹는 모습을 보여준 치포틀리의 경우는 과거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광고에 근접한 것이다. 또 다른 치포틀리 크레딧으로는 카메라맨이 부리토 먹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방송에 문제가 생긴 영국의 뉴스 시간, ‘명작 극장’을 통역하러 나온 수화가가 부리토 먹느라고 제 할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보스턴의 아메리컨 공영방송 부사장 주디 발로우는 “프로그램 맨 뒤에 흐르는 자막에 그저 간단히 몇자 적는 것만으로 후원자를 구할 수가 없는 세상”이라며 “후원자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사실 많은 방송국 매니저들이 이와 같은 새로운 후원자에 대한 배려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영 TV에 대한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은 2000년 이래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충분치 않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운영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다 디지털 시그널로 변환시키는데도 추가 비용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은근하게 점점 광고화되어가는 후원자 메시지는 이미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고 있다고 공영TV 간부들은 개탄한다. 공영방송이 일반 상업방송을 닮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부 광고업계 간부들도 이 새로운 후원자 소개방식은 그렇지 않아도 자꾸 기울어지고 있는 공영방송의 상업화를 앞당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공영 TV가 연방자금 지원을 받아 생겨난지 얼마 안된 1967년에 연방통신위원회는 후원자 크레딧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었다. 그러다 1984년에 위원회는 회사의 로고와 그 제품및 서비스를 팔기 위해 선전하지 않는 한 ‘가치중립적’으로 기술해도 된다고 완화시켰다.
1993, 1994년부터 후원자 소개는 화려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최상급이나 비교급을 사용할 수 없는 등 언어 선정에 매우 조심하고 주의했었다. 2003년부터는 30초짜리 후원자 메시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250만달러, 나중엔 150만달러로 내렸지만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한 13개 기업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이 이 메시지에 전통적인 광고 아니면 특별히 제작된 마케팅 슬로건을 내보냈다. 맥도널드의 경우, 유아용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후원자 크레딧에 회사 로고및 전세계적 광고 주제인 ‘아임 러빈 잇’을 넣었고, ‘척 E 치즈’는 역시 아동 프로그램인 ‘아서’‘바니 앤드 프렌즈’ 후원자 크레딧에 자사 웹사이트를 보여주고, 이 회사 슬로건인 ‘아이가 아이일 수 있는 곳’을 빗대어 ‘PBS 어린이-아이가 아이일 수 있는 곳’이라는 소리를 곁들였다.
<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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