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기관 ‘코코’ 전선덕 대표
장애인 복지기관 ‘코코(CO CO)’의 대표 전선덕(53. 베이사이드 거주)씨는 아들의 장애를 희망으로 승화시킨 한인 어머니다.
그는 장애 아들을 돌보던 고달픈 삶에서 이제는 다른 장애아들까지 돌보는 희망을 향해 나가고 있다. 7명의 장애아 부모들과 함께 만든 코코가 앞으로 머지 않아 장애아들이 24시간 내내 서비스 받을 수 있는 복지 홈의 꿈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기 때문이다. 코코는 뉴욕에서 장애 아동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유일한 기관.
뇌출혈 장애아들 키우다
‘동병상련’이웃에 눈길
그는 복지홈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몹시 바쁘게 지낸다. 생계 및 코코 운영 자금마련을 위한 가게 운영하랴, 장애인 아들 돌보랴, 또 코코의 장애아들 28명을 돌보랴, 매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생활이 분주하다.
전씨가 제 2의 인생을 맞게 된 것은 첫 아들 하영군을 나면서부터. 결혼과 함께 시작된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5개월 2주만에 조산으로 난 아들에게 불행히도 뇌출혈이 생겨 신체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의 모든 부분이 장애를 안고 있었다.
1파운드 9온스로 태어난 하영군은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4개월, 이후에는 장애아동들만이 기거하는 베이사이드 소재 세인트 메리 아동병원에서 11세까지 생활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 호흡이 어려워 목에 기계를 달고서.
그런 하영군을 전씨는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호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주말마다 데려와 잠시라도 함께 지내기 위해선 6개월동안‘이머전시 케어’교육과 자격시험도 봐야 했다.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난폭해지기 시작, 아들과 아내를 구타하고 집안의 물건도 부수기가 일쑤였으며 점점 더 심해졌다.
전씨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9년 전 남편과 이혼, 혼자서 두 아이 양육을 도맡으며 5년 전부터는 자신이 아이를 돌보다 알게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장애자 부모와 연대, 장애인 돕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코코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전씨는 거의 매일 울면서 살았다. 11세에 아들을 집에 데려왔지만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기지도, 걷지도 못했다.
그러나 전씨는 한 한인간호사(장애인의 어머니)가 “부모가 노력하면 아이가 걸을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갖고 아들을 걷게 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노력했다.
전씨는 가죽 재킷을 오려 아이의 무릎 양쪽에 대고 기는 연습을 시켰다. 그런 노력을 하다보니 하영군의 상태는 집으로 온지 4개월이 되면서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전씨는 아들을 집에 데려와서 휠체어를 하루밖에 태우지 않았다.
그 결과 병원이나 주위에서 모두 놀랄 정도로 그의 아들은 기기도 하고 벽을 짚고 일어서게 까지 되었다. 그러더니 13세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 이제는 걸어다니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걷는다. 전씨는 이제 모든 시련을 딛고 일어나 장애인 부모들이 하루속히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복지 홈 마련을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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