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 -한미주씨
길을 가다보면 깨어져 움푹 패인 길을 만날 때가 있었다. 때론 헛발을 딛어 균형 잃은 속은 신열을 토하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메우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 그 자그마한 웅덩이에 빗물이라도 고일 때면 바라만 보던 하늘에 손을 담글 수도 구름을 움켜잡을 수도 나에게 돌팔매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웅덩이 속에서 베어 나오는 소리를 한올 한올 고치를 풀어 명주를 지어내듯 글로 쓰고 싶다.
제일 먼저, 날 만드신 하나님께 찬양 드린다. 또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끝없는 격려로 마음 써주신 김정기 선생님께, 버팀목이 되어준 문우 조 권사와 남편에게 그리고 두 아이들에게 기쁨을 돌린다.
=꼼장어는 오그라들었다
비 온 날 배달된 석간 신문 마냥
젖어 돌아온 남편 풀어진 두 눈은
좀체 드러내지 않던 축축함이 있었다
연기가 빼꼭한 포장 마차에 앉자
그는 말간 소주잔을 거푸 비웠다
푸른 귓바퀴에 뽀송한 살결
아들만한 나이 그 찌푸린 미간 앞에 서면
저절로 구부려지는 낙후된 뼈들이
몇번씩 인가 아리는 목젖을
눌렀다고 했다
자기 하나 바라보는 이들을 위해 짤린 그 자리에
꼭 있어야했다고 혀를 차며 되뇌었다
석쇠 불 위에서 꼼장어는 타면서도
돌아눕지 못하고 오그라들었다
식구들을 발찌처럼 찬 남자
비칠 걸음으로 걷는 발이 어두웠다
정갈히 가르마 타 빗던 검은 머리
탱탱하던 뒷덜미 말갛고 두툼하던 손 대신
풀 죽은 목고개 쓰다듬는 검버섯 핀 살 마른 손이
내 눈을 파고 들어
뒷 가슴을 훑는다.
시 부문 심사평
마종기 /시 인
당선작인 ‘꼼장어는 오그라들었다’는 일선생활의 고단한 풍경을 잘 형상화했다. 젊은 날의 남편을 대비·회상하면서 고개를 넘은 나이의 남편이 직장마저 잃은 것을 ‘돌아눕지 못하고/오그라드는 꼼장어’로 연상하는 아내의 시선이 숙연해 보인다. 사실이든 아니든 설명 형식으로 진부해질 수 있는 사연을 품격을 갖추고 받쳐준 기량이 돋보인다.
가작 ‘라싸 가는 길’의 시인은 많은 습작을 거친 분으로 보인다. 내용의 분위기도 좋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곳곳에서 보이는 상투적인 표현이 오히려 이 시의 짐이 되고 있다. 끝마무리의 끈기도 필요하다. 이 시에서 마지막 연은 훌륭한 공간에 먹칠을 한 격이 되었다.
가작 ‘항아리’는 함께 보내온 11편의 시와 함께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어 일단 안심이 된다. 그러나 가벼운 스케치 풍의 터치가 많고 풍경이나 미술작품의 알레고리에 머물러 무엇인가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 것이 흠으로 느껴졌다.
한혜영/시 인
다분히 회화적인 정지현님의 ‘라싸 가는 길’은 사람 살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 곳에 ‘헤진 가방 두 개’를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는 말만으로도 생이란 얼마나 막막하고도 고단한 사막인가를 충분히 보여준다. 하지만 과감하게 생략하면 더 좋았을 마지막 2행으로 인해 끝내는 한미주님에게 당선자리를 내주었다.
‘비온 날 배달된 석간 신문’이기도 하고, 타면서도 돌아눕지 못하는‘석쇠 불 위의 꼼장어’이기도 한 가장. ‘꼼장어는 오그라들었다’는 매우 적절한 시어를 선택, 고달픈 가장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함께 보냈던 ‘고등어’도 좋게 읽었다.
정지현님 외에 가작으로 정해진 김종란님의 ‘항아리’는 지극히 말을 절제함으로 오히려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작품이다. 빈집 자체가 항아리거나 화자자신이거나, 더 나아가 ‘두터운 손으로 어루만져논’ 항아리는 또 다른 이미지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함께 투고한 작품으로 보아 노력을 많이 하는 분 같아 앞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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