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7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배석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한국에도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양국의 인적 교류 활성화를 위해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에도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데 대해 부시 대통령은 “주한 대사에게서 보고를 받아 한국 측 입장을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한국 측은 한국민의 미국 비자 신청 거부율이 3.2%까지 축소됐으므로 비자 면제 자격 요건인 3% 미만에 가까워졌다며 빠른 시일 내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 당국은 비자 거부율이 3% 정도로 떨어질 1년쯤 후부터 비자 면제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무비자 수요가 가장 높은 것은 ‘B1(단기상용방문)’과 ‘B2(단기관광)’ 비자다. 한번 발급 받으면 10년 동안 1회에 최장 6개월까지 자유롭게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입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따라 관광 및 상용방문 목적의 경우 90일까지 비자 없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서유럽 국가와 일본,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27개국이 이 프로그램을 적용 받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무비자 입국이 반드시 바람직한 지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우는 아이 젖 한번 더 준다” 했듯이 무비자 입국을 반미 감정 해소책으로 내세워 온 한국 측 요구가 어느 정도 관철된 것 같다. 그러나 미 이민법상 비자 면제국에따르는 권리와 의무의 이해 없이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첫째, 먼저 무비자로 입국하면 9일까지 미국체류가 가능하다. 즉 9일 전에 반드시 미국을 떠나야 한다. 이것이 미 이민법 규정이다. 따라서 무비자로 입국한 자는 미국 내에서 체류연장을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회사 출장이나 여행 중 9일 이상 소요될 경우 미국 내에서 이민국을 통한 체류 연장이 안 된다. 미국 방문을 위한 경비와 시간을 고려할 때, 체류 연장 불가능은 심각한 불이익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무비자로 입국한 자는 미국 내에서 다른 비자로 변경할 수 없다. 즉 미국 방문 중 취업기회를 찾았거나 혹은 공부할 경우가 있어도 취업비자나 학생비자로의 변경이 안 된다. 결국 한국 내 미 대사관을 통한 비이민 비자신청을 하여야만 된다.
셋째, 무비자로 입국한 자는 미국 내에서 영주권 인터뷰 신청을 할 수 없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족이민이나 취업이민의 조건을 갖춘 자라 할지라도 미국 내에서의 영주권 인터뷰 신청이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 내 미 대사관에서 이민 비자 인터뷰 수속을 해야 한다.
이러한 미 이민법 규정 때문에 성급한 미국 무비자 입국은 오히려 한국의 자존심을 구길 수 있으며 수많은 한국인을 불법 체류자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마치 나방이 불을 보고 뛰어드는 것처럼 비자 면제로 인한 무작정 미국 입국자는 막아야 한다.
방문 비자를 받아야 하는 지금도 미국만 가면 다 해결된다고 믿고 있는 한국 실정을 고려할 때 무비자 입국 후 얼마나 많은 불법 체류자가 발생할 지는 삼척동자도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경기가 나쁜 이 상황에서 명퇴 당한 자나 자녀의 교육 때문에, 그리고 비자 인터뷰에서 떨어질까 봐 아예 비자 신청도 못해 본 사람들이 미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불법 체류자가 되면 운전 면허증과 취업이 불가능하고 자녀의 대학입학도 힘들다. 또한 불법 체류 후 미국을 떠나면 미국 재입국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수많은 인생이 깨지고 만다. 비자 면제국 취소라는 예견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의 비자 면제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상조이다. 미 이민법에 대한 홍보가 있은 뒤 한국경제가 호경기일 때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무비자 입국은 사탕보다는 오히려 쥐약이 될 수도 있다.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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